의성군 안계면의 시골에서 자란 열한 살짜리 소년은 친구들과 도시락을 싸들고 무작정 동네 뒷산을 올랐다. 산짐승에 놀라 도망가다보니 능선을 돌고 돌아 마을까지 오게 됐다. 그것이 산과 인연의 시작이었을까.어느덧 중년이 된 소년은 에베레스트, 초모구두, 쉬모캉리 등을 등반한 베테랑 등반가가 되있었다. 산에 반해, 산이 좋아 `산쟁이`가 된 박재석(51)씨는 최근 경북산악협회 K2 원정대장을 맡아 의미있는 재도전에 나선다. 그는 오는 13일 출국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오르게 될 산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카라코람산맥 K2(8천611m)다. 에베레스트보다 낮지만 어느 루트를 오르던 난이도가 높아 `악명높은 산`으로 불린다. 산악인들이 두려워하는 산 중 하나로 꼽히는 K2는 박 대장에게 아물지 않은 상처와도 같다. 지난 2004년 포스코원정대 소속으로 같은 곳을 등반했으나 900m지점 캠프2에서 자는 도중에 눈사태가 일어나 동료 3명을 잃어버리고 돌아왔다. 박 대장에게 이번 원정은 지난 상처를 딛고 K2를 다시 가야하는 이유 중 하나다. 더욱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박 대장은 무엇보다 안전하게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대장으로서 대원들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그의 이번 임무이기도 하다.박 대장은 "대자연이 허락해준다면 잠시나마 정상에 올랐다 돌아오면 더좋겠다"고 바람을 표했다. 박 대장과 함께할 원정대원들은 경북 각 지역의 산악구조협회 대장으로 주로 구성됐다. 김병구 원정부대장(포항), 남영모 등반대장(포항), 장비담당 신용현(청송)·권오일(포항), 촬영담당 이문세(구미), 최세환(안동), 식량·의료담당 김재형(포항), 김경태(문경), 수송담당 김찬일(김천), 회계·기록담당 이상구(경주) 등이다. 이들은 지난 1년간 40kg 배낭을 메고 오르막을 오르고, 쉬지 않고 1시간 이상 걸으며 인내력을 키우는가 하면 크램폰(아이젠이라고도 함)을 빙벽화에 착용 후 암벽하고 한라산 장구목에 올라 설벽훈련을 하는 등 고된 훈련을 함께했다.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악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오히려 더 많다는 이들은 서로를 목숨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기에 더욱 소중하다고 한다. "산꾼들은 특별히 끈끈한 정이 있어요. 악우의 정이라고 하죠. 보통 친구가 아닌 목숨을 나눌 수 있는 의리를 갖고 있죠. 히말라야 같은 곳에서 내 생명이, 그리고 동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순간에 정이 없으면 난관들을 헤쳐갈 수가 없어요."이러한 악우, 대원들에게 박 대장은 항상 눈빛을 강조한다. 악조건에서 눈빛은 항상 반짝거리고 정신을 바짝차려야 한다. 자칫 하다간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악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목숨을 걸면서 하는 도전에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로 도대체 산에 미치는 이유는 뭘까, 산의 매력을 궁금해한다. 박 대장 역시 1997년 에베레스트로 첫 원정등반을 갔을 땐 고소증으로 애를 먹었다. 밖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답지만, 실제로 그 곳에선 희박한 공기 속에 고통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이후에도 그는 끌리는 대로 산에 올랐다. 2001년 초모구두를 세계최초로 등정했고 2002년 쉬모캉리를 정찰등반했으며 2004년 K2 북릉을 우리나라 최초로 등정을 시도했다. "산에 오르면 나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능력에 희열을 느끼며 마음 속으로 내가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실패와 죽음의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도전할 곳이 없다던가 도전할 이유를 모르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와요."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그는 K2 등반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다음 등반 계획을 마쳤다. "나이가 오십이 넘다 보니 산에서는 할배 소리 들어요. 20대 청년일때 친구들끼리 약속한 것이 있어요. 환갑때도 암벽등반 하고 있어야 한다고. 내년에는 또래끼리 유럽 알프스 몽블랑을 오르기로 했어요."`주변의 만류에도 휘말리지 않고 모든 것을 이겨내 산으로 가는게 진정한 산악인`이라는 박 대장의 끝없는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경북산악협회 K2 원정대원 11명 모두가 무사히 등반을 마치고 8월 19일 귀국하는 모습을 응원한다. [경상매일신문=최보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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