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초등학교 때의 일이니 어림잡아도 10여 년 전, 그 때도 5월이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하물며 나쁜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일은 고문과도 같지만 요즘은 자주 그 때를 기억하게 된다. 그 날은 학모의 자격이 아니라 성폭력상담소장의 자격으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강의를 하던 날이었다. 0 0초등학교 전체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인지라 긴장감이 상당했었다. 특히 나이 지긋한 남자교사들에게서 제기되는 편견에 가득 찬 노골적인 질문들은 순간 불쾌함을 느끼기에도 충분했지만 최대한 성실하고 예의바른 태도로 ‘통쾌한’ 답변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갈 즈음 한 남자교사의 커다란 빈정거림의 발언이 들렸다. “개도 암내를 풍기면 ~~ 여자가 암내를 풍기는데 마다 할 남자가~~ 그렇다면 00이거나~~하하하~~” 순간, 교무실에 감도는 썰렁함 반, 웃음 반이라니. 90분간의 교육이 그야말로 동네 개 짖는 소리가 되던 순간이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지만 대꾸의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하고 못 들은 척 교육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 강력한 일갈을 못 날리고 온 것이 분해서 두고두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2016년, 5월. 한 여성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한국사회는 마치 성 대결의 장이 되어가는 듯했다. 애써 여성혐오범죄라 결론짓지 않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인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며 도리어 한 편에서는 더욱 노골적인 혐오의 대상이 여성이 되어가고 있음을 경험하면서 참으로 씁쓸하다. 사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성혐오의 다양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단지, 매우 극단적인 사건으로 발생 했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운전에 방해가 되는 운전자가 여성일 때는 강도 높은 비난을 하거나 심지어는 여편네가 집구석에서 밥이나 하지 왜 돌아다니냐 한다. 헌법에도 보장된 거주이동의 자유가 남성운전자에게 완전히 박살나는 순간이다.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교육문제를 ‘치맛바람’ 표현 하나로 뭉개면서 여자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외치기도 한다. 여자가 똑똑하면 피곤하고, 경제력이 있는 여자는 좋지만 남성들의 취업이 안 되는 이유는 여자들까지 취업경쟁에 나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IMF 시기, 해고 1순위의 기준은 남편 있는 여성이었으니 OECD최고의 여성 대학진학률을 기록해도 OECD최하의 여성 경제활동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젊은 여자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는 게 큰 일이라면서도 힘들게 살아가는 미혼모를 보는 시선은 별에서 온 그대이다. 남자 대학생들 다수는 늘 남성보다는 덜 똑똑하고, 돈은 잘 벌되, 남성보다는 조금 적게 벌면서 마냥 상냥하고 이쁘고, 날씬하며, 상대 남성과 그 가족까지도 존경과 사랑으로 바라보는 일편단심의 여성이 이상형이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여자는 거의 없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보면 여자들의 이상형도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문제는 비난받아 마땅할 문제적 남자도, 문제적 여자도 많은데 왜 늘 여성이라는 성에게로 집중포화가 ‘더, 강도높게’ 쏟아지는 가이며 공격과 비난의 가장 쉬운 대상이 왜 여성이어야 하는가이다. 교육의 문제도, 취업의 문제도, 만혼과 비혼, 저 출산의 문제도, 뿌리 깊게 형성된 성별화된 관습과 전통들도 심지어 군대의 문제까지, 거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되었어야 마땅할 문제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이젠 대학생이 된 딸에게 그저 매사 조심하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어서 무력함을 느끼는데 아니, 이건 또 뭔가? 한국여성들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날씬하다는 2015 OECD통계를 우연히 본다. 한국남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가보면 한국여자들이 제일 이쁘더라.”는 말의 객관적 증명인 셈이다. 그러나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님을 부디 모든 독자들이 공감하시길 바란다. 단, 여자를 길들이기를 원하는 사회일수록 여자의 몸을 통제하게 된다는 사실의 이면을 이해하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