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기회가 있으면빈집 앞에 서서 주인을 불러 보라대답은 없지만없는 대답을 타고 떠내려 오는 막막한 고요 속에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그대 자신의 무덤 속침묵 같은 것을영원한 부재(不在)의 그림자 같은 것을 한 번쯤 목도(目睹)할 수 있으리니시의 산책로=삶의 세계에서 삶이 아닌 세계로 들어가는 일은 한 순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현자라면 살아있을 때에 삶과 죽음을 다 초월해두겠지만 보통 사람은 그게 안 된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 하듯, 삶이 안정적일 때 죽음을 준비해 두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필 맥그로(Phil McGrawㆍ65)는 저서 『리얼 라이프』(Real Life)에서 “인생에서 결코 피할 수 없고 부인할 수도 없는 위기들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인간의 아둔하고 허약한 부분을 꼬집은 대목이다.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죽음이지만 죽음은 번거롭고 불쾌한 것이기에 일단 피하고 보자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인간은 현재에 여유가 있으면 앞으로도 그렇게 수백 년을 살아갈 것처럼, 불과 수개월이나 수년 후의 일을 알지 못한 채 소위 ‘갑(甲)질’까지 하는 오만함을 보인다. 종교인, 교육자, 문학가, 예술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슬픈 일이다. 시의 화자(話者)는 이미 삶과 죽음을 통찰하여 스스로 초월하였다. 화자가 무덤, 부재, 그림자 등의 음울한 시어(詩語)를 동원한 것만 보아도 이미 죽음과 어느 정도 친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느닷없이 죽음이 찾아와도 그 충격은 최소화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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