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儒學)의 견위수명(見危授命)과 애국심대구지방보훈청 총무과 오시열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제자를 많이 배출한 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은 일찍이 유학자(儒學者)의 공부 목적인 세상에 나아가(出世) 세상을 경영하는(經世) 뜻을 버리고, 말년에는 지리산 산천재(山天齋)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은거하는 삶을 사시다가 생을 마치셨다.남명 선생께서 기거하신 산천재(山天齋)는 주역의 산천(山天) 괘(卦)에서 나온 것으로 ‘크게 가르친다’는 대휵(大畜)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실재로 남명 선생의 이러한 큰 가르침은 선생께서 돌아가신지 10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남명 선생의 제자 중 50여명이 넘는 제자들이 의병장으로 활동하여 국가와 백성을 위하는 남명선생의 정신을 실천하였다.의병은 나라가 위급할 때 스스로 일어나 조직된 민군(民軍)이다. 그 기원은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으며,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조선 말기에까지 이르렀으며 조선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구한말과 대한제국을 거쳐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 유림(儒林)은 독립운동에 크게 참여하지 않았다. 유림이 이를 반성하고 무언가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의 방법을 모색하면서 이루어진 사건이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내기 위해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작성한 사건이 파리장서 사건이다.지난달 3월 29일은 유림단이 우리민족 독립의 염원을 담은 파리장서를 제출한 날이다. 우리나라 유학의 뿌리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세월 동안 유학 경전의 견위수명(見危授命)의 가르침은 굳이 인지과학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서 살면서 우리의 생각, 언어, 행동 등에 영향을 크게 주었을 것이며,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바치는 행동은 자연스럽게 체화된 애국심의 발로로 작용되어 왔을 것이다.연초부터 이어온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계속되는 위협으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내재된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우리 국민은 어떠한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북한의 무모한 도발은 우리의 애국심만 굳건히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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