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과학 방법론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남성 우월주의를 보다 확실히 드러냈다. 베이컨에게 자연은 ‘수동적이고 때로 완고한 여성’이었다. 따라서 자연은 인간, 보다 정확히는 ‘남성’을 위해 봉사하는 노예가 돼야 한다고 믿었다. “자연은 마녀와 같아서 수시로 고문하고 폭력을 행사해야 비밀을 토해낸다”는 것이다.수세기 동안 이어진 이런 자연관 앞에서 여성 과학자들이 디딜 땅은 비좁을 수 밖에 없었다. “유대인이나 흑인, 그리고 여성들은 워낙 사회적 차별에 길들여 있어서 정당한 대접을 받겠다는 욕심도 별로 없었습니다. 나는 여권 운동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처럼 차별의 장벽이 무너지는 사건을 접할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격에 목이 멥니다.” 유전자의 자리바꿈현상 등에 관학 탁월한 업적으로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여성 유전학자 바버라 매클린톡이 미 국립과학아카데미의 정식 회원으로 선발된 후 동료 학자에게 보낸 구절이다. 그나마 매클린톡은 장수했기에 81세 늦깎이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다.한국의 여성 과학자들의 현주소는 어떨까. 아마 학창시절부터 유ㆍ무형의 차별과 싸워왔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 풍토가 아주 달라지진 않은 듯 싶다.미래학자들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예언한 바 있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 그리고 그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이미 오래전 자신의 저서에서 여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만방에 고하고 있다. 최교수는 사회생물학자답게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컷들의 행태를 인간과 비교 분석하고 있다.최교수의 환기시켜주는 다윈의 ‘성 선택론’에 따르면, 번식에 관한 결정권은 암컷에게 있다. 수컷이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둘중 하나다. 기가 막히게 매력적이어서 암컷으로 하여금 사족을 못쓰게 하거나, 암컷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독점해 그들의 선택권에 영향을 주는 정도의 전략 구사를 말한다.최교수가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되어 20년 간 연구해온 민벌레, 그 수컷은 허구한날 암컷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게 삶의 전부다. 암컷을 유혹하는 꿩 수컷의 현란한 동작 역시 마찬가지다. 유전자ㆍ호르몬ㆍ두뇌의 차이로 남녀는 어차피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만, ‘생물학적 전환’에 도전해야 한다고 성큼 제안한다. 성(sex)은 정해졌으나 젠더(gender)는 얼마든지 열려있다는 것이다.여자는 반듯한 X염색체를 두 개씩이나 갖고 있지만(여자=XX), 남자는 X염색체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없는 Y염색체를 (남자=XY)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자와 난자의 가치까지도 다르다고 말한다. 한번에 천문학적 숫자의 정자를 쏟아 붓는 남자는 마치 값싼 주식을 여러 종목 구입한 다음 운좋게 성공하자는 물량작전이고, 여자는 소수의 황금주에만 투자하는 질적 전략이라는 것이다.그런데 이 저서에서 사회생물학자임을 밝힌 최교수는 놀랍게도 페미니즘과 사회생물학의 화해를 제기하고, 나아가 금세기가 여성의 시대가 될 수 밖에 없는 근거가 바로 생물학에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제시하는 과학적 근거의 핵심은 “모계효과(maternal effect)”이다전통적으로 발생유전학의 측면에서 수정란이 성체가 되는 과정은 주로 정자와 세포핵 DNA의 관점에서 설명됐다. 정자가 씨(남성의 DNA)를 뿌리면 난자로 표상되는 여성은 그 씨가 자라게 하는 밭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난자의 수동성과 ‘유전자=생명’이라는 정제가 깔려있다. 지금까지 공격성 강하고 힘센 수컷이 생식을 주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 암컷들이 선택권을 가지기 때문에 암컷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양질의 정자를 공급해주고 젊은 수컷에게 밀려나는 ‘기운센 머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는 것도 거세(去勢)사회와 무관치 않다. 엄마처럼 포근한 여자와는 안심이 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서구 귀족사회에선 남자의 첫 경험을 엄마의 친한 친구와 갖게하는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최근 극성인 성교육도 문제다. 교육이란 미명 아래 성은 신비스러운것도, 흥분할 일도 아닌, 마치 물건처럼 취급되고 있다. 모든 걸 다 까발리고, 벗기고 하는 통에 아예 성에 대해 무신경․무감각해진다. 호기심도, 가슴조이는 아슬아슬함도 없다.산실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아파하는것까진 좋다. 하지만 아이가 출산하는 바로 그 장면은 안보는게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너무나 처연하고 동물적이다. 남자에게 그곳은 언제나 신비스럽고, 호기심과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내가 언제까지나 낭만적이고 신비스러운 존재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 우리 사회는 남자 기를 꺽는, 아예 죽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여성의 권위와 권리를 침해하려는 뜻은 아니다. 마음 약한 남자의 거세 불안을 이해하자는 뜻에서다. 남자의 기가 꺽이면 그 가정도, 사회도 무기력증에 빠져들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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