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에 재학 중인 도움반의 정관이는 학교에서 가장 밝고 예의바른 학생이다.친구들이 예의가 없는 행동을 하면 웃음 띤 얼굴로 잘못을 지적해주고 자신이 잘못하면 바로 인정하며 고쳐나간다.장래희망이 축구선수이지만 기량이 많이 부족함을 인지하고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같은 반의 하서는 늘 자기의 친동생인 신입생 다인이를 자랑하고 다닌다. 공부도 잘하고 예의바르다며 묻지 않은 얘기도 곧잘 들려준다.그러면서도 동생에 대한 걱정이 많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너무 고생이 많다며 안타까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자기는 앞으로 시내버스 기사가 되어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봉사를 하는데 앞장서겠다고 각오가 대단하다.금년 2월에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 진혁이와 소형이는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음료수를 사들고 환한 얼굴로 학교를 찾아온다. 선생님들과 교실이 그리워서란다.도움반 선생님들과 후배들 교실을 거쳐, 온 학교의 학년실과 교과연구실을 돌며 큰소리로 인사를 건네고는 스스럼없이 선생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정담을 즐기다 늦게 서야 돌아간다.둘은 영일고 도움반의 멋지고 당당한 1회 졸업생들이다.장애인의 날이라 그런지 오늘 따라 매일같이 교장실을 찾아와 큰소리로 인사를 건네던 성민이가 그립다.몇 가지 추억과 단상들이 스쳐간다. 본교의 도움반 학생들은 한 울타리에서 함께 생활하는 일반 학생들과도 유독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학교생활을 즐기는 것 같다따로 수업을 받다가도 급식소에서 같은 반 친구를 마주칠 양이면 몇 십 년 지기보다 더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순백의 영혼으로 사람을 반기는 해맑은 도움반 친구들의 향기가 학급 친구들의 배려 깃든 따뜻한 마음과 서로 씨줄과 날줄로 만난 덕분이리라.점심시간이면 그 격의 없는 만남이 보기 좋아 미소를 머금고 한동안 숟가락질을 멈추곤 한다.그런데 본교 학생들이 이렇게 장애 학생들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나 차별인식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아마도 물처럼 유연하고 편견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하고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이겠지?그러나 한편으론 본교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다양한 인성교육과 거기서 비롯된 학교의 전통과 문화 덕분이 아닌가도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본교는 일반계 고등학교로서 대학진학을 목표로 교육활동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느 학교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하지만 봉사활동 만큼은 남다르다. 벌써 10년도 훨씬 전부터 22개 기관과 자매결연을 맺고 체험활동이나 봉사활동을 진정성 있게 지속해오고 있다.소외된 이웃들이 생활하는 시설들이 많은 편이지만, 장애인 거주시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10개 이상 기관에서 매월 2회 이상 봉사활동이나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들꽃마을, 향기마을, 예티쉼터, 예우리, 좋은이웃마을, 포스코휴먼스, 정애원, 명도학교 등을 방문하여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자신의 작은 재능이라도 나누고 함께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체험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공동체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온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셈이다.그래서인지 본교의 학생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이들에게 늘 마음이 열려 있으며 기꺼이 그들을 사랑할 줄도 안다. 말 그대로 나눔과 배려가 봄에 배어있다는 뜻이다. 향기는 자연스럽게 벌과 나비를 부르는 법이던가. 본교 학생들의 인성이 반듯하고 착하다는 소문이 울타리를 넘어서자 장애인 학부모들이 본교에 특수학급 설립과 장애 학생 입학을 간절히 청원하였다. 그것이 벌써 4년 전 일이다.당시 교장이시던 최상하 이사장님이 평소 장애인 교육에 관심이 남달랐고, 학생들로 하여금 장애인 시설까지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도록 교육해오던 터라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특수학급 설립을 추진하셨다.지금은 도움반이 2학급으로 늘어나 14명의 장애 학생들이 비장애 학생들과 어울려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체육활동이나 수학여행까지 도우미 학생의 손을 잡고 일상을 함께한다.1인1악기 연주 시간에도 빠짐없이 참여해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를 불고, 학년말에 부모님을 초청한 감사발표회에도 당당히 참여해서 급우들과 합주를 한다.이어지는 성년식에서도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감사편지를 띄엄띄엄 낭독하며 남다른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한다.수학여행 때는 6월의 장미보다 더 붉은 열정으로 도우미 친구들과 협력하여 거뜬히 과제를 해결해 낸다. 이 모두가 편견을 넘어서 한 방향을 바라보고 동행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미래의 진정한 실력은 인성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남과 함께 일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은 이미 미래 인재의 중요한 핵심 역량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다름과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인성 능력은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는 동안 체득되는 능력이 아닌가 생각된다.본교에서 특수 학급을 운영하며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매년 1학년들의 수련활동마저 찾아가는 음성꽃동네 봉사사랑체험활동으로 대체해 실시해오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고, ‘향기’라는 자율 동아리를 구성해 매월 2회 ‘향기마을’의 생활인들을 위한 목욕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장애인들과 공존하는 사회 구현은 이처럼 배움의 공동체인 학교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하고, 통합 교육으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통합 교육은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도록 하는 방식이다. 장애 학생은 같은 급우들과 어울리면서 사회성을 기를 수 있고 비장애 학생도 약자를 보듬는 법을 배워가는 이상적인 교육이다.상생의 지혜를 가르치고 공감과 소통의 인성을 지니도록 통합교육을 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존의 미덕을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지 않겠는가.특수교육 대상자들에 대한 학교의 역할을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의식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무엇보다 통합교육에 대한 교육 주체들의 관심과 자발적 참여가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자치단체에서도 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이나 일반 학교의 특수학급 편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지역 시민 사회도 추진과정에서 혹시 불거져 나올지도 모를 지역 이기주의나 장애인에 대한 ‘님비(NIMBY)’현상을 경계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한다.이미 포항에도 솔선수범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아름다운세상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사회봉사단체들이 많이 있다.대부분의 로타리 클럽이 장애시설에서 활동을 하거나 도움을 주고 있다. 포항로타리클럽처럼 매월 셋째주회를 향기마을에서 개최하며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세상 만들기에 앞장서는 단체도 있다. 본교 학생들이 시설 좋은 온천탕에서 장애인들과 어울려 목욕 봉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인심 좋으신 이동스포랙스 이재탁사장님의 숨은 후원과 따뜻한 동행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장애인들이 가장 행복한 포항시의 미래가 밝은 이유다.-포항 영일고등학교장 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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