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눈빛만 보아도 안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이심전심이라는 말도 있다. 단일 언어를 쓰는 국가로서 역사가 오래 유지되어서 자연스런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니 토론 문화가 형성되기 어렵다. 핵심에서 벗어나거나 자기주장만 하다가 불리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여건이 복잡하고 가치관도 많이 다양화되었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필자부터 고정관념에서 빠져 바보가 되는 것은 않는지 반문하게 된다. 최근 성 매수 의심자 명단 6만여명이 존재하고 의사ㆍ변호사ㆍ교수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한다. 크든 작든 성매매 산업에 조직적 네트워크가 존재하나 늘 관심 밖이었다. 매스컴은 고위공직자 유명인 지도층이 적발사례를 주로 보도하였고 관중은 내심 고소해하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성매매 업소를 폐쇄 몰수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관심 밖이다. 참고로 시애틀 경찰당국은 ‘더 리그’란 성매매 조직을 적발하는 게 목적이라며 관련된 한국인 성매매 여성들을 석방했다. 매체가 쏟아내는 가십 기사에 시민들이 휘둘리는 것은 후진사회의 전형이다. 방대한 고객을 관리하는 ‘성매매 조직’이 과연 있다면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한다. 성매매든 마약사범이든 관련 조직을 없애나가고 이를 평가해주는 정부 시스템이 구비주어야 선진사회가 된다. 최근 천안함 좌초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최근 1심 판결이 났다. 소고기 파동 천안함 폭침 세월호 사태 등 큰 사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음모론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극명하게 편이 갈리기 때문에 갑론을박에 총력전이 벌어진다. 따라서 과학적 객관적 증거가 나오고 사법판결이 나도 여전히 믿지 않을 기세다. 관련하여 옥스포드 대학 데이비드 그라임스 박사의 논문 「음모론의 생존력」이 눈길을 끈다. 그는 특정 기관이나 세력이 사실과 다른 주장 즉 ‘음모’를 꾸밀 때 얼마나 비밀이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다. 1969년의 달 착륙 여부나 소아백신 유해성 외계인 은폐 등에 거짓이 있다면 3-4년 안에 들통이 난다고 한다. 그는 관련자들이 2천521명이 넘어가면 5년 이상 비밀이 유지될 수 없고, 1천명 이내여야 10년을 간다고 한다. 공모자가 125명 이내여야 100년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SNS가 발달한 이 시대에 10명의 입이라 한들 비밀이 유지될까. 세상의 모든 일을 의심하는 자세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지만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편향적 사고 또한 경계하여야 한다. 특히 청년들은 가급적 부정적 냉소적이기 보다 적극적 긍정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체르노빌 원전 후쿠시마 원전 세월호 등 예기치 않은 위험은 수시로 발생한다. 그러면 미디어는 ‘막을 수 있는 인재’라고 단골로 결론 내린다. 그리고 때맞춰 실무 공무원 등의 과실이나 관리 소홀을 찾아내어 준엄한 처분이 내려진다. 물론 위험이 설계상의 실수나 관리자의 태만에 있는 경우도 많다. 위험 현장은 속보로 실시간 보도되나 위험의 진앙까지는 누구도 파고들지 않는다. 정부도 현 실정에서 감당이 가능한 안전대책을 수립 발표한다. 이러한 임시방편적 대책은 더욱 근원적인 고민과 성찰을 하지 못하게 막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결과적으로 안전 신화 즉 자연을 잘 알고 통제할 수 있다는 과다한 자신감을 유지시킨다. 따라서 여전히 수많은 세월호가 하늘 땅 바다에서 끊임없이 왕래한다. 그러니 21세기에도 우리의 주요 현장에서는 새해나 기공식 준공식 시 안전기원제를 드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민계층이 오히려 보수당(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이른 바 기득권층이 강남좌파(진보세력)가 된다는 역설을 자주 듣는다. 물론 소시민들이 작은 자산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른 바 강남좌파는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하면 좋은 명분에 여차하면 대박이 날 수도 있다. 그리고 설혹 실패해도 큰 부담은 없다. 여기에는 살펴볼 것이 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면서 영리만을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명예를 돈으로 사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법과 도덕을 준수하고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설 땅이 없게 되었다. 즉 소시민들은 명예를 선택하면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자라는 용어가 수구 기득권층으로 오해되어 오류를 가져왔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소득 수준 차이가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명예를 존중하는 의미로 재정의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좌파는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빨리 변화시키려는 진보나 개혁세력과 동의어가 아니고 보수와 대칭적인 용어는 더더욱 아니다. 명예와 품위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어나가려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최근 세상이 급변하면서 국가 정치 경제 시민단체 개인 등 모두들 생존전쟁에 몰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기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고 교묘히 확산시켜나간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선순환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퇴행적인지 여부는 시민들이 정신 차리고 살펴보아야 한다. 성매매 사례나 각종 안전사고는 사회 제도로 풀어야 할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돌리거나 미봉책을 제시하는 사례이다. 각종 사고의 음모설과 보수 진보 등 용어적 혼란은 특정 집단에 유리한 여론을 이끌어가자는 은밀한 시도이다. 이래저래 복잡한 현대인들이 고민해야 할 것이 늘어만 간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