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해외 식당에서 근무하던 종업원 13명이 탈출해 국내에 들어왔다. 12명이 여자인데 어느 누구도 한국행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에도 한두 명이 개별적으로 탈북했지만 집단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제재에 직면해 외화벌이 최전선에서 일하는 핵심층이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의 집단탈출은 한 달 전 한국 정부가 해외의 북한식당 이용 자제 등 독자적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한 뒤의 첫 성과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12개 국가에서 운영하는 130여 개의 식당은 연간 1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주요 외화 수입원이다. 이것이 김정은의 통치자금이나 핵·미사일 개발에 쓰여온 것이다.정부의 제재 조치 이후 북한식당을 찾는 한국 관광객과 주재원, 교포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중국 동북 3성의 북한식당 중 일부는 운영난으로 폐업했다. 이번 집단 탈출은 최근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대북 제재로 인해 해외 북한 식당들이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식당 영업은 안 되는데 당국으로부터 외화 상납 압박은 계속돼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다"고 탈출 동기를 밝혔다. 국제 제재를 통해 북한의 해외 돈줄을 옥죈 것이 해외 노동자의 집단 이탈까지 불렀다는 얘기다.북한 내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해외식당에서 근무하는 종업원은 중산층 이상으로, 출신 성분이나 당성(黨性)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북한 당국의 충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이들이 해외에 파견 뒤에는 서로를 견제할 뿐 아니라 국가보위부 요원을 동원하는 감시 시스템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번 집단 귀순은 이런 시스템에 균열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집단 탈북의 공식도 바뀌었다. 그만큼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의 중산층 사이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한 회의(懷疑)가 번져 간다는 것을 시사한다. 김정은 집권 후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 지대에 대한 단속을 크게 강화하면서 탈북자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뤄진 집단탈북이어서 의미가 깊다. 북한 식당은 2000년대 초반엔 종업원들이 ‘남조선’이 아닌 ‘한국’이란 용어를 쓰고 한국 노래를 부르면서 남쪽 관광객들을 맞이하며 남북 교류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나,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부터는 ‘외화 창구’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박 대통령은 지난 국회 연설에서 "지금부터 정부는 북한 정권이 핵 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이라고 대북 강경정책 전환을 선언했다. 이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기대를 접고 북한 체제 붕괴(레짐 체인지: Regime change)까지 염두에 둔 공세적 압박에 집중하겠다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이대로 가면 2~3년 뒤에는 5차 핵실험이 이뤄질 것이고 북한은 수년 내에 수소폭탄을 보유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김정은이 아닌 북한 주민들과 신(新)신뢰프로세스를 구축할 때다. 다량의 핵을 보유했던 구(舊) 소련도 결국은 국민의 봉기에 의해 무너졌다.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상을 접할 수 있도록 그들의 눈과 귀가 돼 주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