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제국주의(帝國主義)라고 하면 극히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화에 따른 창씨개명 한글 말살 종군위안부 등을 떠올린다. 국제적으로도 나치의 히틀러 파시스트의 무솔리니 일본 군국주의 등을 연상하고 제2차 세계대전 참혹한 인명 피해를 생각하게 된다. 한편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저)』에서는 인류역사의 발전에 있어 돈(자본주의)과 종교에 이어 ‘제국’이라는 개념을 들고 있다. 하라리가 분석한 제국의 특징과 인류사에 미친 영향 등을 살펴하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되새기고자 한다.고대 로마 몽고 스페인 영국 등 모든 제국은 형성 과정에서 무자비한 침략전쟁을 감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정의라는 것은 없었다. 한반도도 한나라, 몽고, 일본, 청나라 등의 침략을 받고 막대한 희생을 강요받았다. 제국은 수십여개의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나라와 민족을 지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피지배국들의 언어와 문화 전통은 말살당하고 흡수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을 사용하는 인구가 많은 것도 그 과정의 산물이다. 또한 통치의 편의를 위해 화폐와 제도 등 표준화를 시행하고 공통의 문화를 만들어서 지배를 정당화한다. 그리하여 수십 수백년에 걸쳐 식민지 엘리트부터 제국과 ‘우리’라는 동류의식을 심어나가는 것이다. 일본이 언어와 역사문화 말살 천황숭배 강요 등을 실시한 것은 전형적인 사례이다. 일제 당시 한국학 학자인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는 당파성을 토대로 조선인에게 노예근성을 심어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다. 강대국 사이에서 국가와 민족 고유 언어 독자 문화 등을 지켜낸 것은 대단하다. 그러나 식민 잔재를 근원적으로 청산하거나 창의적으로 극복하기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어려운 과제이다. 인류의 모든 문화가 부분적으로는 제국과 제국주의 유산이 섞여있는 만큼 간단히 도려낼 수 없다고 본다. 한편 근세 유럽 국가들은 매우 탐욕스러웠고 과학기술을 제국주의의 팽창에 적극 활용했다. 예를 들어 18세기 영국은 타히티, 호주, 뉴질랜드 등을 탐험하면서 천문학 지리학 기상학 동식물학자를 동반하여 식민지화의 초석을 다졌다. 이들은 과학자가 동승한 군사원정대이자 과장하면 군대의 보호를 받는 과학탐사대라고 볼 수 있다. 18~19세기 유럽의 주요 군사원정대들은 거의 모두 과학자들이 승선하였다. 나폴레옹도 이집트 침공시 과학자들을 보내서 종교, 언어, 식물연구 등 새로운 이집트학을 만들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도 해군함을 타고 남아메리카 해안과 갈라파고스 제도 등을 탐구하였다. 반면 15세기 세계 최강국인 명나라의 경우는 정복 DNA가 크지 않았다. 일곱 차례에 걸친 정화의 대항해는 인도양과 아프리카에 이르렀다. 그들은 선진 문물을 과시하면서 선물을 주고 조공을 받는 정도에 그쳤다. 즉 방문한 나라들을 정복하거나 식민지로 삼지도 않았고 그마저 갑자기 중단되면서 중요한 기술적 지리학적 지식은 단절됐다. 우리는 흔히 임진왜란의 교훈을 이야기하면서 강성한 일본의 군사력에 비하여 조선의 국력이 크게 약하고 분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란 전에 일본 간자가 승려 등을 가장하여 조선의 산천, 지리, 물산, 인심 등등을 치밀하게 파악하였다는 점을 경시한다. 또한 구한말 일제가 조선 침략과정에서 조선을 치밀하게 파악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합병 이후에도 토지조사, 광물조사 등 자연 이외에도 인문 사회문화 전반을 철저히 파악하였다. 나아가 조직적인 조작과 세뇌를 통해 식민근성을 심어주고 동화정책을 실시하였다. 5~6년전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자이트 대사는 아프가니스탄 대사 근무 당시 데미안 석불 파괴 등 아프간 전역을 순회하면서 찍은 사진과 함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이트 대사는 왜 목숨을 걸고 험준한 산악지형에 무장전사들이 들끓는 지역을 돌아다녔을까. 예나 지금이나 아프간은 여행 자제지역이고 교민이나 대사관 직원들이 카불시내를 다니기에도 치안이 불안하다. 국립외교원 연수 당시 중동 중앙아시아 연구를 토대로 그 이유를 추측해본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즈음 이미 석유가 장갑차 등 연료로 활용되었고 카츠피해 연안(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도 채굴됐다. 당시 여러 서구열강들은 접근로를 찾기에 혈안이 되었고 험준한 아프간이 유력한 통로로 개척된 것이다. 열강들의 입장에서는 석유길에 해당되지만 평온하던 아프간족은 침략전쟁에 내몰린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조선 침략의 명분으로 명을 정벌하기 위해 길을 빌린다는 이른바 ‘정명가도’(征明假道)라고 할까. 자이트 대사의 생명을 건 아프간 일주 자료는 매우 희귀하고 소중한 경험이자, 독일의 자산이다. 대한민국이 강대국이나 제국이 되기는 어려우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한류의 바람을 바탕으로 사회문화융성 국가가 되기 위하여 다른 국가 사회를 근원부터 파악하고 우리 문화와 접목시켜야 한다. 그러나 아직 한국사회는 돈이 되는 부분에만 관심을 가지거나 필요에 따라 정보를 졸속적으로 모으는 수준이 아닐까. 5대양6대주를 누비는 기마민족이 체득한 정보와 자산은 꿰어야 보배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다방면에서 치밀한 정보의 수집 분석 정리 축적해야 한다. 산학관 합동으로 정보 축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록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되살아났으면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루 빨리 한국판 브리타니카백과사전 강희자전 등이 나오고 박물관 도서관이 유명한 나라가 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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