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아내의 성화다. 안 신는 신발을 정리해 달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뒷창이 달아버린 구두, 가죽이 굳고 터져버린 구두, 유행 지난 구두를 그대로 두었으니 매번 소리를 듣는 것도 당연하다. 막상 정리하겠다고 신발장문을 열었다가 슬며시 닫게 되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쁘게 뛰어다닐 때나, 힘들어 홀로 강변을 걸을 때, 승진이나 경사가 있을 때, 언제라도 마다 않고 기꺼이 나를 데려다 준 것들인데 낡았다거나 유행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린다는 것이 왠지 죄스런 기분이 들기에 구두 수선집에 맡겨 고쳐보겠다는 핑계를 대곤 하는 것이다서서 생활하는 인간은 거의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무언가 신고 있게 된다. 두발로 걷는 인간에게 신발이란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특히 구두는 바깥 생활에 필수품이며 동반자다. 앙증맞은 돌맞이 아이의 신발에서부터 안전하고 편한 노인용 신발에 이르기 까지 형태와 용도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은 종류가 시장에 나와 있다. 집신에서 고무신, 그리고 가죽 이제는 인조피혁까지, 신발을 만드는 재료는 과학의 발전과 디자인에 따라 무한 변신을 하고 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재봉틀 하나만 가지고 구두를 수선해주는 수선소가 길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수지를 녹여 몰드로 성형하는 일체형의 신발이 대부분이니 수선 하시던 분들은 지금 무엇을 할까? 신발의 재질과 제조 방법이 달라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새 신 보다 땀내 나고 좀 헐었어도 즐겨 신던 신발이 편하다는 사실이다. 발과 구두는 함께하는 시간에 의해 서로 동화되어 되어간다. 인체 중에서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발은 52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체의 사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뼈와 뼈를 잇는 관절도 많고 사람마다 특색이 있으니 넓고 좁은 모양, 길고 가늘거나 굴고 짧은 발가락과 관절들....... 생각만 하여도 발과 신발의 동화 과정은 신기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발은 주인의 몸무게를 떠받들고 있다. 움직이는 형태에 따라 몇 배의 무개를 지탱해 낸다. 그러나 이는 신발의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흘깃 본 옆얼굴에서 더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듯 구두의 옆모습에서 구두 주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반짝이고 봉긋한 옆모습으로 새로운 출발을, 빛바래고 툭 튀어나온 모습으로 애달픈 삶을 점칠 수 있다. 입학식, 취직, 결혼, 새 옷을 샀을 때와 같이 인생의 새로운 전환의 기회 때 마다 새 신발을 산다. 즉 생의 새로운 전환을 새 신발로 맞이하게 된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어떤 인생길이건 평탄한 길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산길에서 오르막과 내리막, 개울과 절벽을 만나게 되듯이 뛸 듯이 기뻐 달리는 길도, 가슴을 찔러오는 아픔에 서성이는 길도, 길을 잃고 헤맬 때도 있지만 신발은 언제나 그 길 위에 같이 있게 마련이다. 처음 만나는 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조금만 참고 시간을 같이 하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서로 의지하며 같이 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새 신발에 발뒤꿈치가 까지기도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서로 동화되어 하나와 같이 움직인다. 새 신발이 발에 맞지 않는다고 버린다면 신을 수 있는 신발이 몇이나 될까? 시대가 변해 기술과 디자인인 좋아지고 발전해 동화의 시간과 고통의 강도는 줄었다 하더라도 외피가 늘어나고 발 냄새가 배어야 편한 내 신발이 된다. 결국 신발장에 가득한 신발들은 내 인생의 흔적들일 수밖에 없다. 구두가 낡아진 만큼 추억은 희미하지만 신발은 내가 갔던 곳, 머무른 곳의 흔적을 간직 하고 있을 것이다. 과감히 버리는 것이 정리의 기본인 줄은 알지만, 매번 정리하겠다고 신발장 문을 열었다 닫는 나는 다시 신발하나 정리하지 않는 게으른 남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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