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한 벗들과 모처럼 만났더니 자식들 때문에 고민이 깊어졌다며 탄식들이다. 30대 후반인 자식들이 결혼에는 아예 무관심이란다. 종전까지만 해도 결혼과 연애가 최대 관심사였는데 시큰둥하다는 것이다. “연애건 뭐건 다 피곤하고 이제 그냥 ‘나만의 방’에서 쉬고 싶을 뿐”이라며 지금 직장생활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결혼까지 해서 남편, 아이, 시댁식구를 챙길 자신도, 힘도 없다는 게 이들의 푸념이란다. “시댁, 친정 눈치보랴, 애들은 밤낮 속만 썩이지, 남편은 TV만 보며 포크로 등을 긁어대니… 결국엔 화장실 휴지 하나 제대로 갈지 않는 사람과는 진정한 키스가 불가능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깨닫는 거지. 결혼은 비극이야.”영화 ‘스토리 오브 어스’의 한 대사다. 부부간 갈등을 심도 있게 다룬다. 그러나 요즘 젊은 여성들 중에는 처음부터 이런 결혼의 역사를 만들지 않는 쪽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다 포기하는 세대를 ‘3포세대’라고 부르는가 하면 ‘비혼(非婚)족’이라함은 결혼을 못했다는 ‘미혼(未婚)’이 아닌 앞으로도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선언을 한 신생부류들을 일컷는 풍속어 이다.비혼(非婚) 추세 확산과 결혼 연령대 상승, 그리고 산모의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 등이 맞물린 결과로 올 1월 새로 태어난 아이와 결혼 건수가 해당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1월 기준)를 기록했다.`1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 혼인 건수와 출생아 수는 각각 전년 동월 대비 15.8%, 5.7% 감소한 2만3900건과 3만9500명으로 집계됐다.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기 위해 여성을 겨냥한 제도적, 정책적 보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 제도들 속에서 결혼 지연과 출산율 저하는 ‘여성 때문’이라는 역설이 만들어진다. 초혼 연령이 높아지는 것은 여성과 남성 모두의 일인데, 여성의 문제로만 지목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뿐만 아니라 남성은 자신의 능력만 성취하면 알아서 ‘어린 여자’들이 줄을 서기 때문에 결혼이 지연되어도 상관없고, 여성은 능력도 성취하고 ‘상품가격’을 위한 나이도 지켜야 하는 이중 족쇄에 걸려있음에도 여성의 결혼 지연은 문제가 된다.얼마전 한 언론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싱글세’(1인가구 과세) 같은 패널티 정책이 필요할 지 모르겠다고 하는,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하면서 ‘싱글세’ 논란이 시작됐다.온라인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자, 다음 날 보건복지부는 “실제로 ‘싱글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진화에 나섰다. 저출산 대책으로 과거에는 아이를 낳은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줬지만, 앞으로는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에게 페널티를 줘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농담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더 이상 낭만적 결혼은 없다. 결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결혼이 미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혼은 누군가의 미래일 수는 있지만, 누구나에게 미래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은 자본, 국가, 남성중심적 가치들의 응축적 결과이기도 하다.돈도, 여유도, 마땅한 상대도 없는 3무(無)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비혼(非婚) 세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 몹쓸 사회는, 요즘 비혼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결혼하기 싫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못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이 시대 결혼의 의미는 불안정한 조건들 속에서 어떤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친밀함에 대한 거래의 일부이자, 생존 전략들 속에 구성된 것이다. 정작 재생산(再生産)을 책임진 세대들은 시드는데 장밋빛 미래와 국가경쟁력을 운운하는 건 허황되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은 짝짓기와 번식이 아니던가. 지금 현실에 발목 잡힌 인간들은 종족의 본성을 거부하고 있다. 마음 놓고 짝을 지어 2세를 낳을 수 있는 자연적 욕망을 몰수당한 세태가 서글프다. 지금은 100세 시대를 넘어 수명이 점점더 증가하고 있다는 현실로 볼때 한시적으로 3포세대 였던 사람들도 어느 시기가 되면 연애나 결혼을 시도해 볼 수 도 있지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는 비혼족이라고 장담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많이 살다보면 인연이 나타날 수 도 있는 일이니 낙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비혼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문제의 시작인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혼자가 되어서 불행하고 삶이 퍽퍽한데 하소연도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사실 혼자인 삶이 훨씬 비참하고 외롭고 고독하며 심지어 경제적인 고통도 크다는 사실은 감내(堪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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