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아래 화랑교육원에는 국궁장이 있다. 화랑정신을 기르기 위해 세워진 그곳에서 고등학생 간부들과 국궁 수련을 할 때 궁사가 쏜 화살이 날아가 파란 잔디가 깔린 110M 거리의 과녁에 꽂히는 것을 보았다. 매처럼 날아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목표물에 꽂히는 것을 보면 전율이 느껴진다. 그러나 내가 쏜 화살은 30M에 떨어졌다. 탄력 있는 활과 그렇지 못한 활의 차이 때문이다. 기술과 당기는 힘에 의한 탄력의 차이도 있지만 활시위를 걸어서 활을 쏠 수 있게 하는 상태인 해궁(解弓)작업을 할 때 활 양쪽에 잡아 매어 해궁을 수월하게 하는 도구 때문이라고 한다. 이 도구가 바로 도지개이다. 이것은 소의 멍에처럼 굽어져 있어 양쪽에 1m정도의 굵은 노끈을 매달아 동여매면 활이 뻗어지면서 해궁이 된다고 한다. 그런 다음 이것을 풀고, 밟고, 또 뿔을 깎고 하면서 활의 모양새를 바로 잡아가는 것이다. 활이 많이 굽은 것이 심곡이고 그 다음이 중곡, 연곡 순이란다. 균형이 잘 잡히도록 해야 멀리 나갈 뿐 아니라 정확히 명중하는 것이다. “활을 쏘아 잘 맞추지 못하면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궁도의 교훈이 있지만 자신이 아무리 잘 맞추려고 해도 활 자체의 구부러짐이 정상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는 아무리 자신을 돌아봐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활의 균형을 잡아주는 ‘도지개’이다.나에게도 도지개의 역할을 하는 분이 계신다. 요즈음 나는 활을 쏘듯 문자를 백지에 쏘고 있다. 수백 번 활 쏘는 연습을 해도 활이 바르지 못하면 목표물에 적중하지 못하듯 글이란 것도 하루아침에 쓰여 지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좀 더 잘 쏘기 위해서 신경을 쓰면 오히려 과녁보다 더 빗나가는 것처럼 잘 쓰려고 욕심을 내면 오히려 형편없는 글이 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활을 쏠 때 ‘목표물 정면 하늘을 보고 당기라’는 말처럼 “언어 표상을 전화된 의미로 변용하고, 생각할 때는 기발하게, 이외성의 긴장감으로 특정 사물을 붙들고 계속해서 상상을 이어가는 노력을 하라”는 ‘낯선 글쓰기’의 가르침을 자주 들으면서도 게을러서 생각하지도 않고 즉흥적으로 글을 쓸 때가 많았다.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목요일 새벽에 일어나 몇 줄 긁적거려 쓴 글은 도지개 되는 그 분은 정확하게 꼬집어 “지난 주에는 바빠서 아침에 급히 썼구나”하고 지적할 때가 많다. 한 주간동안 주제를 놓고 고민 하고 사전을 찾아 소재들을 공사장 벽돌 쌓든 끼워 넣다가 다시 쌓고 새벽 늦게까지 퇴고하여 가지고 가면 아무 말씀도 없이 엄지와 검지를 들어 원을 그리시며 싱긋 웃으시는 것이다. 도지개의 줄에 팽팽하게 맞대어 균형이 잡혔다는 뜻이리라. “자기의 결점을 알고 이것을 교정하기 위해서 이성이 있다”고 말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나의 결점은 스스로가 알고 있기에 교정하려는 이성의 작용이 약하여 부끄럽기만 하다. 러스킨은 “예술의 목적은 단순히 가르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지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예술이 단순히 오락일 뿐이고 진리를 제시하는 힘이 없을 때 그것은 참다운 예술이나 고상한 예술도 아니다”고 말했다. 막무가내로 활을 당기면 부러지지만 적당하게 당기면서 늘여주고 활 중간 살을 오려 내면 무지개 모양의 균형 잡힌 활이 되는 것이다. 나의 도지개 같은 분은 군살을 많이 오려내어 주셨다. 굽은 것은 펴 주시고, 너무 느슨한 것은 굽히는 도지개였다. 기교가 아닌 문학의 정신과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신 것이다. 도지개에 연곡, 중곡, 심곡이 있듯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곡에서 심곡으로 점점 더 깊이 있게 가르치고 나를 깊이 있게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아직은 연곡에 머물러 있어도 적당한 바람이 불어야 활을 멀리 가게 할 수 있듯이 주변에서 동행하며 채찍질하는 친구들의 열정과 격려는 적당한 바람이 되는 것이다. 활의 굽기와 화살의 방향과 길을 정확하게 가게 해주는 것이 도지개라면 우리에게도 도지개 같은 역할을 하는 스승과 바람의 역할을 하는 이웃들이 있어서 날마다 행복을 노래하며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