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로 구운 바나나를 즐겨 먹는다. 오븐에 넣고 껍질이 까매질 때까지 구우면 되니 간편하다. 식기 전에 껍질을 벗겨내고 떠먹으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속살 맛은 일품이다. 따듯한 아이스크림 맛을 내는 바나나가 장내 유익 균을 증대 시켜줄 뿐 아니라 식이섬유도 많아 변비에도 좋다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내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바나나가 귀하고 비싸서 쉽게 먹이기 힘든 과일이었으나 이젠 어디를 가나 과일 진열대에 널따랗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과일 중에 바나나는 수입량이 제일 많은 과일이고, 세계적으로도 거래량이 제일 큰 식용자원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소비되는 과일임에도 생산현지에서 소비되는 양이 전체생산량의 대부분이라고 하니 정말 엄청난 양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골프경기중계를 보다 보면 운동 중 선수들이 바나나를 먹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나나는 고 칼로리에 긴장감까지 완화 시켜주는 성분이 있고 거기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 일정한 컨디션과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는 선수에게 정말 고마운 먹 거리일 것이다. 바나나를 자주 먹다보니 싸게 사는 요령도 터득했다. 바나나가 떨어질 즈음이면 저녁 식사 후 운동 겸 근처 마트엘 간다. 폐점을 앞둔 시간에는 신선 상품 중 당일로 유통기한이 지날 물건들을 싸게 파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활인판매를 외치는 중에 바나나도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싸게 파는 바나나는 표피에 검은 반점이 있게 마련이고 싱싱한 다른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볼품은 없다. 하지만 바나나는 후숙(後熟) 과일이다. 열대과일 중 바나나를 비롯하여 키위, 망고 등은 좀 덜 익은 상태라도 상온에 보존하면 스스로 익어간다. 과육에 포함된 탄수화물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포도당이나 과당 등으로 당화과정이 일어남으로 짓무르지만 않았다면 오히려 반점 있는 놈이 훨씬 달콤하기 마련이다.후숙 과정을 거치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이는 태어나서 계속 성장한다. 의무교육을 거치고, 대학교육을 마치고도 사회에 나와 보면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얼마나 작은지 알게 되고, 정년을 맞아 직장을 끝내고 나서도 배워야 할 것들이 태산이다. 사람은 실수와 반성을 통하여 성숙되어 간다. 결국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익어가는 후숙 과일과 같다. ‘그 때 그것을 알았더라면’ 공부도 잘하고, 재산도 모으고, 좋은 사람도 만났을 터인데.....라고 반성하게 되는 것 자체가 인간은 후숙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바나나는 표피에 검은 점이 생기면 떨이 신세가 된다. 하지만 아직 연초록색을 띠는 싱싱한 바나나가 보기는 좋으나 미끄덩한 질감과 특색 없는 맛에 비하면 후숙된 떨이 바나나가 훨씬 달콤하고 맛있다.나이 들어가는 노인의 피부에도 거뭇한 점이 생긴다. 이런 점이 생기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여 저승꽃이라 부르기도 하니 검버섯이 생기기 시작하면 여생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뜻한다. 하지만 이 검버섯이 생길 때 즈음에야 비로소 성숙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 인생 아닐까? 바나나의 숙성과 인간의 성숙이 묘하게 겹친다. 초록의 열매가 계단을 이루며 달려있는 우람한 모습은 건강한 청년의 모습과 유사하고, 노란 색으로 물든 탐스러운 바나나 다발은 열심히 자기의 일에 힘쓰는 장년의 아름다움과 비교되고, 반점이 생겨도 속살은 더욱 달콤하게 숙성되는 과정은 검버섯이 생겼지만 살아온 삶의 과정을 통해 성숙의 단계에 이르는 노인과 대비할 수 있다.새것만 찾는 시대다. 늙고, 오래되고, 낡은 것은 무시된다. 그러나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손때 묻고 오래된 것들에는 추억이 담겨있다. 추억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도 무시하는 것이 된다. 이제 머지않아 나의 피부에도 검버섯이 생겨날 것이다. 잘 후숙된 바나나와 같이 그동안의 나의 삶을 통한 성숙의 결과가 달콤하고 부드러운 속살로 가득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