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순간 떠오르는 수많은 이미지들, 그 가운데서도 카리브해의 진주라 불리는 쿠바! 꿈에도 그리던 ‘그 쿠바’를 다녀왔다. 일정을 계산해 보니 한국과 쿠바의 왕복에 소요된 시간이 거의 3일이었다. 3일을 비행기 안에서 먹고, 잔 셈이다. 방학이면 어김없이 해외로 쏘다니는 게 거의 습관이 됐기에 아무리 긴 비행시간이어도 잘 견디고, 때론 그 시간들을 즐기기도 한 나로서는 큰 데미지가 없을 줄 알았지만 이번 여행은 귀국 후 상당한 후유증을 남겼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다시 쿠바에 가고 싶으냐를 묻는다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Yes!”다. 내가 알고 있던 쿠바는 400여년에 걸쳐 이뤄진 스페인의 잔혹한 수탈의 역사를 가진 나라, 물질만능의 시대에도 아직은 모든 면에서 덜 오염된 나라! 그리고 아직도 미국의 이익을 지키며 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가 자국민에게는 최고의 모욕인 나라! 쿠바독립 최고의 영웅인 혁명가이자 문학가인 호세마르티의 나라! 혁명의 일상성과 휴머니즘의 정점을 보여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진정한 혁명가 게바라가 활동했던 나라! 권력으로서의 혁명을 증오한 반면, 투쟁으로서의 혁명을 절대 지지하고 쿠바인보다 더 쿠바를 사랑했던 미국인 헤밍웨이의 흔적을 깊은 존경으로 간직한 나라! 여인보다 농민을 더 사랑했기에 농민들로부터 절대적 사랑을 받았으며 여느 사회주의 국가의 수장들과는 달리 자신을 결코 우상화하지 않은 피델이 있는 나라였다.그리고 다음은 본격적인 나의 쿠바견문록이다. 반세기도 넘는 시간동안 미국의 경제봉쇄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기에 거의 모두가 가난하지만 행복하고, 쾌활한 삶을 사는 쿠바인들의 일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심지어 동전 굴러가는 소리만 나도 춤을 추는 사람들이 쿠바인들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디를 가든 그야말로 ‘마냥’ 즐거운 춤과 음악이 끊이지 않는 그들. 때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춤과 음악마저도 불순하게 보여지지 않는 것은 그들의 일상에 녹아든 특유의 낭만과 삶에 대한 긍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객관적으로 살펴봐도 그들의 행복지수는 지난 2009년 영국 신경제재단(NEF)의 발표에 의하면 세계 7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호세마르티 한국쿠바문화 클럽에서 만난 한인후손들과의 만남이다. 1900년대 초,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거짓광고에 속아 1000여명의 조선인들은 41일간의 항해 끝에 멕시코 서남부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들 중 100여명이 멕시코 에네켄농장의 가혹한 착취와 고된 노동을 피해 이주했던 곳이 바로 쿠바였다.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서 시작한 한인 이민의 역사가 멕시코와 쿠바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이 일제의 침탈로 망국의 민족이 된 한인들이 라틴 아메리카 내에서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쓰게 된 배경이다. 그러한 암흑의 역사를 지닌 한인 후손 3세들과의 만남은 가슴 뭉클한 감동 그 자체였다. 현재 쿠바에는 약 천명의 한인 후손들이 살고 있다. 쿠바 동화과정에서 7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거의 쿠바인과의 혼혈이다. 때문에 비록 외관상으로는 한민족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모습이었으나 한글교육이나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한국음식과 의상, 노래 등으로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쿠바인이라는 것 또한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했고,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쿠바를 구성하는 최고의 자산임을 체험하게 된 부분이었다. 사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비참한 문제들은 민족정체성이 국가정체성보다 우선하기에 일어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쿠바인들은 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국가정체성이 뛰어난 나라이다. 따라서 그 곳에서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흑인들이 가장 행복해보이며 백인이라고 혹은 흑인이 아닌 인종이라 해서 우월한 대접을 받지도, 요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 한인들도 아무런 편견과 차별 없이 그 곳에서 살아간다. 오랜 식민지의 역사를 거치면서 원주민인 타이노족, 시보네족 등이 말살된 뼈아픈 역사를 지닌 나라에서 세계의 민족들과 어울려 살면서 오직 좀 더 평등한 나라를 건설하는 데 애쓴 노력의 결과다. 그러나 인종차별도, 성차별도 없지만 저 출산, 급속한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현재 쿠바가 앓고 있는 국가적 문제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로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들을 제공하고 있어도 물질적 풍요로의 욕망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해외진출을 강력하게 조장하고 있다. 지난 연말 이루어진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로 수많은 미국관광객들이 밀려 들어와 기존의 세계 각국 관광객들에 보태어짐으로써 쿠바는 사실상 관광객 포화상태이며, 그들이 쿠바에 남기는 자본의 흔적들은 쿠바젊은이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엄청난 유혹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미국은 중국의 라틴 아메리카 진출에 대한 견제로 우리와 국교정상화를 시도한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단지 경제적 외교수립일 뿐이다. 그런데 남한은 왜 아직 미국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있느냐? 우리는 미국과 싸워 이긴 나라다. 우리는 ‘다 같이’ 더 잘사는 문제에 집중할 것이고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극복해 줄 것이라 믿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사실은 숭고한 혁명의 기운이 자본주의와 서방의 진입으로 퇴색돼 가는 현재 쿠바의 모습이다. 아울러 쿠바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는 우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에게 변화하는 쿠바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케 하고, 그 답을 구하게 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