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타이완을 방문하였다. 타이완은 난생 처음 방문하였는데 수도 타이페이는 외관부터 수수하였다. 엄청난 알부자이면서도 외관보다 실속을 중시한다고 한다. 한 가지 놀랍게도 장기간 식민 지배한 일본을 미워하지 않고 심지어 고마워한다는 것이었다. 귀국하여 ‘친일파를 위한 변명(김완섭 저)’를 읽으면서 역사 인식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친일파를 위한 변명’은 일본을 위한 변명이라고 할 정도로 편향적이다. 그러나 이를 통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 인식의 괴리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먼저 타이완은 4백년간의 여러 식민 지배를 거쳐 51년간 일본 식민지를 받았다. 타인완인들은 일본의 지배가 공중위생 상하수도 도로 등 막대한 인프라 투자와 함께 토지 조사 인구센서스로 근대화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자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친 일본 성향은 오랜 식민 지배의 관행 장개석 국민당 정부의 대만인 학살 등에 기인할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규모의 하이난섬에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고도성장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은 오천년의 역사를 가진 독립국가로 찬란한 선진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비록 일시적으로 과학기술이 낙후되고 성리학 근본주의가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가 될 수 있는 인문학도가 많은 나라였다. 그리고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 군인이 초가삼간 오두막집에서 책을 보고 놀랐다는 교양인들이었다. 따라서 한글을 가진 문명국가를 단순히 물질문명의 관점에서 재단하는 것은 편견이다.18세기 나폴레옹군대가 독일을 침공했을 때 철학자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로 나폴레옹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독일 민족주의를 주창하였다. 후일에 민족주의를 고무하는데 자주 인용되어왔다. 반면 헤겔은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의 구체제를 청산하고 혁명정신을 전파한다고 보아 지지하였다. 1807년 ‘나폴레옹 법전’은 법 앞에서의 평등 신앙의 자유 개인의 소유권 등을 옹호하였고 인류 역사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완용 등 친일파는 앞선 시대정신을 주창한 헤겔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들이 의탁한 천황제는 나폴레옹이 무너뜨린 전제군주체제로서 인류역사와 시대정신에 역행한 것이다. 일본은 수탈에만 급급한 유럽인들과는 달랐다고 강변한다. 미개한 사회구조를 해체하고 신속하게 산업혁명의 기초를 닦아서 조선의 민중들은 개화를 통하여 행복을 누렸다고 한다. 이완용 등 개혁지식인들이 스스로 나라를 일본에 바친 것이고 러시아 영국 프랑스도 지지하였다고 강변한다. 일본이 얼마나 서양 추종자였는가는 일본이 유럽과 같은 봉건주의 단계를 거쳐서 눈부시게 발전하였다는 이론에서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표적 중앙집권국가였던 중국과 한국이 왜 발전하였을까. 봉건제 유무가 아니라 찬란한 문명과 학문에 바탕이 있는 것이다. 일제 식민자본이 주로 투자된 북한이 대표적 낙후국가가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교양인인 국민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한 결과인 것이다. 반면 남한은 육이오의 폐허 속에서도 뛰어나 국민들과 탁월한 리더십이 결합되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내심 자랑하는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은 강탈한 토지를 일본인에게 나누어준 것이었다. 오히려 정부 수립 이후 토지 개혁이 다수의 자작농을 탄생시켜 고도성장의 기반을 만든 것이다. 최근 조 스터드웰은 저서 ‘아시아의 힘’에서 동북아(한중일)에서 개발 초기 토지개혁이 성공한 것이 성장의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이에 실패한 동남아는 낙후된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의 세계 식민화에 맞서서 일제가 황색인종의 보호자라는 과대망상증에 대하여 살펴본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은 일본이 아시아 황색인종을 보호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희생하였다고 강변한다. 13세기 몽고의 유럽 침략 이후 두번째 쾌거라고 과장한다. 따라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서양보다 일제 식민지를 선호하였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한반도 식민지 지배는 그리 잘못된 일은 아니라는 속내를 가지고 있다. 나아가 태평양 전쟁 등에서 조선인이 동참하여 희생된 것은 당연한 소명이라고 호도한다.일본이 아시아인들의 생존과 번영을 위하여 식민 지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을미사변과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등을 통하여 정복전쟁에 나선 것이다. 나폴레옹은 결과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확산하고 인류 문명의 진보에 기여하였다. 반면 일본은 천황제 신권국가였고 자국민의 인권도 억압하는 야만적인 나라였다. 결국 분에 넘치게 서구열강과 패권 다툼에 나섰다가 처참한 피폭 패전국가가 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 인식은 평행선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에 진실과 정의가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필자도 믿고 싶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승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치에 죽은 유명한 유태인 학자가 죽음마저도 승자의 기록에 의지한다면 죽어서도 패배자가 된다고 한탄하였다. 유태인은 끈질긴 역사 탐구와 문제 제기로 역사의 승리자가 되었다. 일본과 역사논쟁에서 과연 우리는 이기고 있는가. 도덕과 정의만을 외칠 것인가 힘을 키우고 역사를 치열하게 탐구할 것인가. 과거에 매몰되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지금 노력하자. 역사전쟁의 승리는 우리 선택과 노력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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