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힘들다는 분들이 갈수록 느는 것 같아 뭔가 위로가 되는, 치유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근데 오히려 저희가 더 위로를 받았죠. 울면서 노래를 하긴 이번이 처음이네요.(윤도현)"
익숙한 듯 늘 새로운 밴드 YB(윤도현 밴드)가 따뜻한 위로와 위트가 담긴 미니앨범 `흰수염 고래`를 냈다.
지난해 7월 프로젝트 음반 `YB vs RRM`을 낸 지 1년 4개월여 만이다.
최근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YB 멤버들은 "오직 YB만이 할 수 있는 음악, 그러면서도 듣는 사람에게 작은 위로를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멤버들의 말대로 새 앨범에는 파격과 따스함이 공존한다.
펑크록 사운드에 트로트 리듬을 얹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익살스럽게 묘사한 `사랑은 교통사고`, 만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내레이션이 인상적인 `꿈을 뺏고 있는 범인을 찾아라`가 록의 전형을 깬 신선함을 선사한다면 타이틀곡 `흰수염 고래`와 리메이크곡 `나는 나비`는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곡은 역시 타이틀곡 `흰수염 고래`다.
40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만든 잔잔하면서도 힘있는 사운드가 인상적인 이 곡은 길이 30m, 몸무게 150t의 거대한 몸집을 가졌으면서도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는 흰수염 고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 고래처럼 헤엄쳐 /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기원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다 만들었어요. 흰수염 고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데도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고 오직 플랑크톤과 크릴새우만 먹는대요. 구애를 할 때는 `끼익∼ 끼익∼` 소리를 내는데 마치 노래를 하는 것처럼 들리더군요. 낭만적이었어요 그 모습이. 존재 자체로 권력일 수 있는 동물이 그렇게 평온하게, 유유자적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 사회와는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윤도현)"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 묻자 윤도현은 "메시지보다는 뭔가를 치유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근데 노래를 만들면서 오히려 제가 더 위로를 받고 치유된 것 같아요. 제가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엠넷 `윤도현의 머스트`)에서 `흰수염 고래`를 처음으로 부를 땐 울기까지 했죠.(웃음) 울면서 노래를 하긴 이번이 처음이네요."
드러머 김진원은 "`흰수염 고래`를 들은 분들은 대부분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 근데 윤도현 씨도 울 줄은 몰랐다"며 웃었다.
윤도현표 `꺾기` 창법을 감상할 수 있는 트로트록 `사랑은 교통사고`의 탄생 비화도 궁금했다.
"한국 밴드만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동안 해외 활동을 하며 얻은 건 미국이나 영국 밴드는 할 수 없는, 더 `우리다운` 음악을 해야겠다는 깨달음이었거든요. 트로트와 록을 접목하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실험이라고 생각했죠.(윤도현)"
그는 "사실 트로트는 어설프게 따라 했다간 엄청나게 유치해지거나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어 걱정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는 잘 나온 것 같다"면서 "`나는 가수다`에서 편곡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소개했다.
`꿈을 뺏고 있는 범인을 찾아라`는 윤도현의 딸 이정(7) 양의 낙서에서 출발한 곡이다.
"정이가 화이트보드에 `꿈을 뺏고 있는 범인을 찾아라`라고 써 놓은 거에요. `이게 뭐야?`하고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이 더 충격적이었죠. 저한테 손가락질하며 `아빠도 조심해, 누군가 아빠 꿈도 빼앗아 갈 수 있어`라고 하더군요.(웃음)"
윤도현은 "아이를 키우며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용기 있고, 아티스틱(artistic)하다. 정말 멋있다. 정이는 내 롤 모델"이라며 웃었다.
이번 앨범에는 MBC TV `나는 가수다`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은 정규 7집 수록곡 `나는 나비`와 `잇 번스(It Burns)`도 실렸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끼는 곡들이에요. 앨범을 냈을 때는 크게 주목을 못 받았지만 `나는 가수다`를 통해 YB의 대표곡이 됐죠.(웃음) 그동안 연주를 거듭하면서 많이 진화된 곡이라 `지금 현재 버전`으로 다시 한번 싣고 싶었어요. `치유`라는 이번 앨범의 콘셉트하고도 잘 맞고요.(윤도현)"
`치유`에 초점을 맞춰서인지 YB하면 떠오르는 `사회성`의 농도는 한층 옅어졌다고 하자 멤버들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뿐"이라며 웃었다.
"이번까지는 실험적인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규 앨범이 나오면 또 달라질 수 있겠죠. 정규 앨범에는 곡이 많이 들어가니까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메시지가 들어가지 않을까요. 하지만 사람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요. 분명한 건 우린 그때그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거죠.(윤도현)"
YB는 이번 앨범을 기점으로 그동안 객원 멤버로 활약해 온 영국인 기타리스트 스콧 할로웰을 정식 멤버로 영입했다.
"스콧은 2005년에 처음 만났어요. 가수 토미 키타(윤진호)의 소개로 알게 됐죠. 몇 번 무대에 같이 섰는데 우리랑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 에너지도 좋고…. 그래서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같이하다 이번에 정식 멤버로 영입했어요. 스콧은 태권도 유단자에 그림도 잘 그리는 재주 많은 친구입니다.(김진원)"
"신기한 건 영국인 멤버가 들어오고 나서 더욱 한국적인 음악을 하게 됐다는 거에요.(웃음) `제3의 귀`가 있으니 우리가 하려는 음악이 정말 우리만의 것인지, 아님 해외 음악과 비슷한지 금방 판명이 되더군요. 음악적인 식견도 넓어졌어요. 스콧이 우리가 잘 모르는 해외 뮤지션들의 음악을 많이 들려줬거든요.(윤도현)"
동료의 칭찬에 스콧은 "YB는 늘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고, 그를 토대로 발전하는 밴드라 좋다"는 말로 화답했다.
YB는 오는 30-31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통하다`란 이름으로 이번 음반 수록곡을 선보이는 연말 공연을 한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뽑아낼 겁니다. 단독 공연에서 스탠딩석을 마련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 저희도 무척 기대가 돼요. 록 넘버랑 감동이 있는 곡을 적절히 섞고 스펙터클한 무대 연출도 선보여 후회 없는 공연으로 만들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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