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류길호기자] 국회의 선거구 미획정에 따라 총선 예비후보들이 국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작위(不作爲) 위법 확인 소송이 서울행정법원 합의부에 배당되면서 국회가 피고 신분이 됐다. 국회가 피고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것은 51년 만의 일이다.국회가 피소된 이유는 헌재가 지난해 12월 31일로 정한 선거구 획정 시한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거구 공백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선거 출마를 준비해온 예비후보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어느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지 몰라 기득권을 가진 현역의원에 비해 불리하다는 분석이다.이와 관련, 최근 임정석․정승연․민정심 씨 등 20대 총선 예비후보 3명은 지난 4일 국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대법원 검색 시스템에 따르면 국회 의정 활동과 관련해 피고를 `국회`로 적시한 행정소송은 1965년 한일협정 비준동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제기된 사건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그간 정보공개·국회직원 해직 불복 소송 등은 여러 건 있었지만, 국회의원 본연의 업무와는 무관했다. 한편, 국회는 2001년 선거구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았을 때 2004년 17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서 겨우 선거구를 조정한 적이 있다.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은 1995년에도 한 달 만에 선거구를 조정했다.그럼에도 당시에는 국회를 상대로 한 부작위 위법 확인 행정소송은 없었다.사건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호제훈 부장판사)는 곧 예비후보들의 제소 사유를 검토할 예정이다.의정 활동을 둘러싼 행정소송은 이례적이지만 일반 민사소송에선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며 의원들을 피고로 삼은 선례는 있다.1998년 7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국회 파행으로 의원들이 일을 안해 시민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국무위원 등을 제외한 의원 283명을 상대로 1억1천300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바 있다. 법원은 6개월간 심리한 끝에 “국회의원은 입법과 관련해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의무가 있을 뿐, 국회공전 등으로 의원들이 시민 개개인에게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1996년에도 국회 파행이 20일 넘게 지속하자 40대 남성이 당시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상대로 국회 파행으로 인해 허탈감에 사로잡혔다는 이유로 3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바도 있다. 이후 소를 제기한 당사자가 취하했다.이와 관련 정치권 한 관계자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며 “여야의 협상을 통해 하루 빨리 선거구를 획정하여 예비후보들의 선거운동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국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