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화학물질이 체내에 쌓여 정자수를 감소시키고 수컷의 암컷화를 초래하는 ‘환경호르몬 공포증’이 한때 일본 열도를 휩쓸은 적이 있다.환경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이미 환경호르몬 피해로 보이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 유해 화학물질과 남성기능의 관련성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고엽재 피해자들중 일부가 불임이나 성기능 장애를 토로하면서 부터다. 이들 참전자들의 다이옥신이나 농약 등 일반적인 화학물질과 한국 남성의 정자기능과의 상관관계는 ‘약정자증’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는데서 밝혀졌다.‘약정자증’ 환자의 경우 1회 정액 배출시 정자수가 최소한 1억개는 넘어야 하는데 6천만개 이하로 정자의 운동성 감퇴가 심각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즉 사회적 스트레스와 운동부족, 약물 등의 원인도 있지만 중금속 등 유해한 화학물질이 정자를 생성하는 고환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있다.환경호르몬이 던지는 예언은 으스스 하다. 한마디로 인간이 스스로 내다버린 화학물질에 의해 수컷이 여성화 되면서 결국 종(種)의 소멸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다.인간이 현재 만들어 내는 화학물질은 대략 20만종, 다이옥신이나 폴리염화비페닐(PCB) 같이 인체에 직접 폐해를 끼치는 공해물질도 있지만 문제는 그동안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온 농약, 계면활성재, 플라스틱의 원료들이 체내에 축적되면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과 흡사한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환경호르몬의 피해가 본격적으로 보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1년부터다. 세계자연보호기금은 야생동물을 조사한 결과 성기 이상이나 생식불능 개체수가 급증한 사실을 발견했다. 농약에 오염된 미국 플로리다주 호수에는 수컷 악어의 생식기가 퇴화되 개체수가 급감했고 오대호 주변의 조류는 알껍질이 얇아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영국의 하천에서는 세제성분이 원인이 된 암수동체의 잉어가 대량 발견되기도 했다. 덴마크의 스카케벡교수는 이미 지난 92년에 “인간의 정자수는 지난 50년 동안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또한 고르본박사는 자신의 저서 ‘잃어버린 미래’에서 “수컷에 대한 환경호르몬의 공격이 이미 광범위 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환경호르몬은 인체에 축적되 수세대까지 영향을 미치며 일부는 불가역성(不可逆性)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말해 일단 체내에 들어오면 완벽한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먹이사슬을 통한 폴리염화비페닐(PCB)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예로 들어보자. 산업폐기물에 섞인 PCB는 먼저 플랑크톤에 흡수되고 플랑크톤은 새우 등 갑각류의 먹이가 된다. 또한 물고기가 갑각류를 잡아먹고 다시 갈메기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먹이사슬을 이루면서 체내에 축적되 간다. 이 과정에서 PCB의 체내 축적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오니(汚泥)를 섭취한 플랑크톤의 PCB 농도는 2백50배로 늘어나지만 먹이사슬의 끝인 갈메기에 가면 2천5백만배로 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70년대까지만 해도 성인남성의 평균 정자수가 정액 1cc당 1억개 이상이던 것이 최근에는 6천개 정도로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환경호르몬 문제는 단순한 오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은 물론 미래의 후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종족보존 차원으로 대처해야 한다.▲환경호르몬이란= 환경호르몬은 정상적인 호르몬이 아닌데도 수용체와 쉽게 결합하는 물질로 열쇠를 모방한 이른바 ‘복제열쇠’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따라서 ‘복제열쇠’와 결합한 수용체는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이상상태를 유발하거나 정상적인 호르몬과 수용체의 결합을 방해하므로써 정자나 난자의 감소현상 등을 일으켜 생물의 정상적인 생식과 성장을 방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