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탄저균 반입 논란을 일으켰던 주한미군의 생물학 균 반입과 사용실태를 점검한 한미 합동실무단의 조사 결과 과정에서 흑사병을 일으켜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페스트균도 한차례 들어온 것으로 파악됐다. 생물학 공격용으로 사용되는 페스트균의 구체적인 반입횟수와 반입 사실이 알려지긴 이번이 처음이다.또 오산기지 탄저균 배달사고에 대한 한ㆍ미 간 공동조사 결과는 탄저균 샘플의 국내 반입이 사실상 아무런 통제없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미군 물품 반입 절차상 큰 허점도 드러냈다.주한미군은 그동안 한국 국민을 기만해 왔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실무단의 발표에 의하면 2009년부터 지금까지 용산기지와 오산기지에서 16차례나 탄저균 실험을 했다. 이 중 어느 한 번도 한국정부에 통보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앞서 지난 5월 살아있는 탄저균 배달 사건이 드러나자 주한미군은 “탄저균 표본 실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발뺌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가 천연덕스럽게 16번의 반입과 실험을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부실 조사결과와 면죄부 재발방지대책은 애초에 한미합동실무단이 구성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사건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오산기지 내 실험실을 주한미군 측이 깨끗하게 정리한 다음 한참 뒤늦게 현장조사를 나갔고, 그것조차 주한미군의 일방적인 설명을 듣고 되돌아오는 수준이었다. 처음부터 우리 정부가 진상을 제대로 파헤치고 재발을 막을 의지가 있었는지부터 의문이다.하지만 이같은 조사결과 마져도 미국측의 설명을 확인할 방법이 없이 일방적으로 수용한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한미가 공동으로 구성한 조사단의 명칭이 공동조사단이 아닌 공동실무단으로 한 것도 미국측의 조사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특히 한국 정부가 생물학 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생물학 균의 반입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미국 언론 USA투데이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주한 미군기지 등에 탄저균을 보낸 더그웨이 미육군 생화학 실험연구소에서 지난 10년간 방사선을 통해 박테리아를 사균하는 효과적이고 표준화된 절차를 지키지 못해 탄저균 샘플을 사균화하고 비활성화하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또 이런 상태에서 2005년부터 10년 동안 전 세계 미군 기지 24곳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전달됐는데 감염된 사람은 없지만 예방차원에서 30명이 항생제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사균화된 탄저균이라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지만, 미국 CDC는 미군이 탄저균을 사균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지난 4월 미군이 ‘살아있는 탄저균’을 오산 기지로 잘못 배송했다는 의혹에 대해 한미 합동 조사단은 애초 미군 발표 이후 사용된 ‘살아있는 탄저균’이라는 표현을 수위가 한층 낮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탄저균’이라는 표현으로 수정했다.다시말해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탄저균’이 잘못 배송된 엄청난 사고를 저질러 놓고도 또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는 데서 분통을 느낀다. 한미합동 실무단의 탄저균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가 사건 발생 200여 일이 넘어서 발표한 조사결과치고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실무단이 발표한 조사결과에는 도대체 탄저균과 같은 위험물질을 들여와서 어떤 실험을 어떻게 했고 무슨 훈련을 했는지가 빠져있고 반입 문제만 언급하고 있는 조사보고서를 보면 이들이 이번 사고를 그저 배달사고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사균화를 하지 않은 탄저균을 배달한 것을 단순한 실무적 실수로 치부하는 것도 놀랍지만 사균화만 했다면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인식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비활성 상태의 탄저균이라 하더라도 엄연한 ‘고위험 병원체’라는 사실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실험과 훈련의 안전은 보장되는 것인지, 실험실은 과연 안전한 것인지, 다른 어떤 위험요인이 있는지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실험장’ 코앞에 살고 있는 한국 국민들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실무단은 재발방지대책으로 ‘SOFA(주한미군지위협정)’의 개정 대신 합의권고문을 개정하는 방식을 내놓았다. 이 합의권고문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과는 다르다. 주한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이 문제가 됐을 때도 합의권고문이 등장했지만 주한미군은 번번이 자기들이 싸인한 권고문을 무시했고, 이 때에도 별다른 제제 방법이 없었다. 이번 사건의 재발방지대책이 합의권고문 개정이라는 것은 주한미군에 면죄부를 주고 넘어가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조사보고서가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대로 어물쩍 넘어간다면 주한미군은 오히려 떳떳하게 한국 땅에서 세균전 무기를 실험할 것이고, 그때는 정말 어떤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 안전을 국가주권의 통제밖에 맡겨 놓는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말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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