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류길호기자] 지난달 국내 굴지의 종합생활문화 기업인 A그룹이 소모성자재 구매 대행업체를 변경했다. 이로 인해 그 동안 A그룹에 각종 소모성자재를 공급했던 1000여개 중소 유통 상인들의 대다수가 변경된 구매대행 업체와 재계약의 기회를 얻지도 못한 채 일괄 계약 종료 위기에 처해 있다.해당 기업에 소모품을 납품했던 한 업체는 “지난 5년간 A그룹에 납품을 했어요. 줄곧 단가를 유지하거나 낮춰달라는 요구를 수용하고서야 겨우 A그룹의 구매대행 업체를 통해 납품을 했어요. 그 동안 납품을 하면서 납품대금에 대한 정확한 정산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A그룹에 어려움을 호소해도 계약 관계상 본인들은 모르는 일이라고만 했어요. 지금껏 여러 어려움을 견디고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올 겨울부터는 다른 대행사로 변경된다고 하네요. 또다시 단가 인하 계약에 서명하지 않고서는 납품을 못한다고 하네요”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 다른 많은 업체는 그동안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묵묵히 대기업에 공급한다는 자부심으로 견뎌왔던 지난 3년 동안의 노력이, 변경된 대행사로 인해 의향조차 묻지 않고 납품기회를 잃게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관련 업계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이유가 대기업간에 사업을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밀약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최근 A그룹은 기존의 대행사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며, 입찰 등을 통한 투명한 사업자 선정이 아니라, B그룹과의 사업 밀약을 위해 B그룹 계열사인 서브원과 그룹의 통합 소모성자재 구매대행 계약을 채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최근까지 기존 대행사를 통해 A그룹에 각종 소모성 자재를 공급을 해왔던 1000여개 납품 영세 상인들은 일방적인 공급 계약 해지를 통보 받게 됐다는 지적이 있다.대기업과 대부분 다수의 영세 납품업자들간의 거래 관계를 갖고 있는 기업 간 소모성 자재 유통 시장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정점에 이르렀던 지난 2011년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중소 상권 침해를 억제하고 공정하고 대등한 거래 관계 문화 조성을 위해 대기업의 MRO사업 자제를 권고해 왔다.기업 소모성 자재(MRO) 유통시장이 복사지, 프린터 토너 등 사무용품에서 각종 공구와 부품까지 다수 품종의 소액 자재로, 국내 시장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25조원에 달하며, MRO 시장의 99%는 30만개에 달하는 중소 영세 유통 업체로서, 대표적인 골목 상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기업의 소모성자재 시장에서 대기업 자본과 소속 그룹 집단내의 보장된 납품 물량으로 다수의 중소 영세 유통 업체들을 자사의 거래 네트워크에 종속 시켜, 월등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거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이번 A그룹의 구매대행업체 변경의 이면에는 대기업 MRO를 이용하는 국내 기업 집단들이 MRO업체의 잦은 변경을 통해 손쉽게 지속적인 거래 단가 인하를 꾀하고, 다른 기업집단과의 타 사업적 연계를 위해 협력업체들의 사업기회를 일시에 정리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러한 대기업의 행태는 청년 일자리 창출 및 대기업과 중소상인 간 공생을 주창한 박근혜정부의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된다.이와 관련,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MRO사업 문제점을 정부가 미리 인지하고 대기업의 MRO사업 금지 권고를 했음에도 포스코, KT등 일부 대기업은 정부의 권고를 무시한 채 MRO사업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다시 중소기업 보호차원에서라도 규제의 칼을 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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