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王)회장, 많은 이들이 고(故) 아산(峨山)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일컫어 이렇게 부른다. 그의 건장한 체구와 선 굵은 경영 스타일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왕이란 수식어는 ‘회장 중의 회장’을 뜻하는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다. 정주영이 태어난 지 100년, 많은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그를 그리워한다. 왜일까.그는 시대별로 국가 경제 발전에 필요한 건설, 조선, 자동차, 반도체 기업들을 창립하고 세계적 대기업으로 육성한 가히 대한민국 국부 창출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요즘 ‘흙수저’ 논란이 뜨겁다. 흙수저라면 정주영 만한 사람이 없다. 그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강원도 시골뜨기였다. 하지만 남이 논바닥의 흙을 보는 동안 그는 논두렁에 핀 꽃을 보았다. 캄캄한 새벽에 정주영이 마주한 것은 짙은 어둠이 아니라 반짝이는 별이었다. 그 스스로 새벽별이 됐다. 무모한 도전 역정에는 꿈을 정한 다음 무한한 긍정 의식을 갖고 창조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주영식(式) 성공 방정식이 있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나라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사업 기회를 도전적으로, 창조적으로 모색했다. 우리는 “이봐 해봤어?”를 외친 정주영의 무한(無限) 도전과 무한 창의를 더 그리워한다. 무엇보다 ‘기업가 정신’의 부활이 시급하다. 그가 활약했던 당시 사업 환경은 지금보다 규제가 훨씬 많았고 선진 기업과의 격차가 컸으며 그들의 견제도 심했다. 국내적으로도 기업인을 경시(輕視)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정주영은 이 모든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담대하면서도 치밀하게 새 사업을 일으켰다.아산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기업으로 현대를 키워냈다. 이제 관심은 ‘현대’의 미래다. 관심은 자연스레 ‘선(宣)’자 돌림의 현대가(家) ‘3세 경영인’들에 집중된다. ‘현대’의 사사(社史)가 70년에 가까워지면서 범(汎) 현대가에 3세로의 경영 승계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업의 핵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회사 지분을 늘리는 등 경영전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또 한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대한민국은 ‘이봐 해봤어?’로 뭉친 기업인의 출현을 대망한다. 원조(元祖) ‘흙수저’고(故)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지금 한국 경제인들에게 ‘이봐 해봤어?’를 다시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