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시대의 길을 열고 질곡의 현대사, 민주화운동의 상징 김영삼 전 대통령이 88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어갔다.거산(巨山)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목이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던 김 전 대통령의 명언이 말해주듯 그의 반세기 정치역정은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나날이었다.그는 초산테러, 투옥과 가택연금, 의원직 제명, 단식투쟁 등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험난한 파도를 넘어 군사정권의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의 탄생이라는 열매를 맺었다.그러나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 3당 합당으로 민주진영의 분열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대통령 재임시절 한보사건과 연루된 아들(현철)의 구속을 지켜봐야 했다.임기 말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초래하면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준 대통령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인은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국민과 고락을 함께했던 정치인이었다.그는 1954년 3대 민의원선거에 26세의 최연소 나이로 국회에 입성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정치활동규제로 출마하지 못했던 11, 12대 총선을 제외하고 3, 5, 6, 7, 8, 9, 10, 13,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9선의원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그가 세운 최연소 기록과 최다선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는 고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국민 속에 살아 숨 쉬며 국민의 성원과 지지를 받아온 정치인이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6년 전 DJ(15대 김대중 대통령) 전 대통령이 서거한데 이어 YS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지난 50여 년간 한국정치를 풍미해온 주역인 3김의 정치가 역사적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민주화운동의 평생 동지요 라이벌이자 나란히 대통령직을 이어온 양김시대가 한 획을 그음에 따라 한국정치가 나아가야할 새로운 지향과 시대적 과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인은 대통령에 취임한 뒤부터는 문민화를 위한 개혁에 정치생명을 걸었다. 대통령 재임 중 청와대 메뉴는 칼국수가 아니면 설렁탕이라고 선언하고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도입,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청산, 조선총독부 건물해체, 부패척결 등을 밀어 붙였다.전방위적인 개혁추진은 기득권세력의 저항과 반발 등 다소간의 부작용도 낳았지만 한국사회를 한 단계 투명화, 선진화하는데 기여했다. 지혜와 통찰력으로 시대정신에 충실하려는 사명감은 정치 9단으로 불리던 고인의 위대한 면모라고 해야 할 것이다.YS는 국민의 대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당 대변인과 원내총무를 지내면서 반독재 투쟁을 독하게 한 장소가 국회였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발언도 의원직을 제명당하며 한 말이다.반대진영에 섰지만 JP(김종필)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타협의 정치인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정치는 국회대신 광화문 광장을 좋아한다. DJ와 YS는 어쩔 수 없어서 거리로 나갔지만 요즘 정치인들은 툭하면 거리로 몰려 나간다.갈등을 국회 안에서 녹여내지 못한다. 정당의 지도자들은 갈등을 국회 안으로 수렴해내야 한다. 그래야만 대통령 중심의 정치를 의회 중심의 정치로 승화시킬 수 있다.정치의 힘은 의회에서 나온다. 정치는 또한 사람이다. YS는 대통령 시절 중요한 사람을 영입할 때면 청와대 관저로 초대했다. 이렇듯 김 전 대통령은 정치시장이 원하는 대로 사람을 귀하게 여겼고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도 아는 온정의 정치인이었다.고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통합과 화합이었다. 의회주의자 이었던 노(老) 정객의 마지막 유훈(遺訓)을 다시한번 여야 정치권은 되새겨 볼 데다.좋은 文學 경북지회장 박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