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만난 그녀가 내가 인사를 건넨다 잘, 지냈어요? 그저 서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잘과 지냈느냐는 말 사이에 얼마나 아득한 벌판이 있는지 알고 있다그 아득한 곳에서 얼마나 많은 길들이 지나갔는지, 몇 채의 검은 구름이 머물다 흘러갔는지, 또 수많은 꽃들과 싱싱했던 이파리들을 붉거나 푸른 피를 쏟으며 썩어갔는지, 수명을 다한 불빛들이 얼마나 많은 어둠을 토하며 죽어갔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벌판이 있다는 걸 묻지 않아도 알고 있다그러나 짐작할 수 없는 아득한 풍경들을 서로의 그림자 뒤로 애써 감추면서 그저 웃는다 그저 벌판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그 나무에 깃든 바람의 영혼처럼 흔들이는 시간들너무 아득해서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서로의 풍경 속, 나무 한 그루에서 다시 인사를 건넨다 잘, 지내요.시읽기인생을 웬만큼 판독한 사람은 ‘잘, 지냈느냐’는 한마디 말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지, 또 얼마나 많은 길들이 지나갔을지 알 수 있다. 몇 년 동안 어땠냐고 굳이 묻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의 섭리와 질서의 순환 속에 모든 존재와 많은 감정들이 생로병사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찬란한 생, 뒤엉킨 세상과 삶 사이에 한계 따위는 없다. 보이지 않는 곳, 너무 아득해서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곳에서,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각자의 풍경 속에서, 얼마나 아득한 벌판을 살고 있는가. ‘잘, 지냈어요?’ ‘잘, 지내요’ 한마디 말 사이에 몇 년, 몇 십 년, 그리고 한생이 흘러가고 있다. 무사하게 마주치는 인사 한마디 속에 막막하고 아득한 삶의 그림자 애써 감추며, 그저 웃으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찬란을 잃어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