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수많은 거대 SOC사업이 수행되었고, 많은 반대와 갈등 속에 진행되어 왔다. 국가발전의 젖줄이자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경부 고속도로의 경우도 사업초기에 수많은 반대에 불구하고 지금은 1일 통행량 100만대 이상에 달하는 중요한 교통인프라로 발전했다.당초 총 공사비 429억 7300만 원은 1967년 국가예산의 23.6%를 차지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고, 1인당 국민총소득도 142달러에 아사자도 속출하던 시기였다. 더군다나 당시 등록 차량 대수가 10만대 남짓이었던 나라였다. “길을 닦아 도대체 누구보고 다니라는 거냐”, “부자들이 기생 태우고 놀러 다니는 꼴이나 보란 말이냐”는 거친 주장까지 나왔다. 두 전직대통령인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들도 반대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주요 언론들도 “주택난 하나도 재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심각한 재정난에 어떻게 4년 만에 완공할 수 있는냐”는 등 반대여론도 만만찮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땅값상승과 개발은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이뤄졌고 결국은 온 국민 모두가 득을 보는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대한민국에게 건국 이래 최대의 기회를 갖게 해준 CDMA통신체계 추진사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이동통신 최고 리더로 꼽히는 삼성전자. 그러나 삼성전자도 처음부터 CDMA 도입을 환영했던 것은 아니다. 정부가 디지털 이동전화 도입을 결정할 무렵, 당시 삼성전자 J 전무는 정부 관계자를 구미로 은밀히 초청했다. “구미 철문을 두 번 열고 들어간, 당시 최고 보안이었던 삼성전자의 사업은 다름 아닌 아날로그 시스템 개발이었다”는 당시 정부 관계자의 증언이다. 교환기 개발에 이어 제2 무선호출 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린 삼성전자는 통신산업의 가능성을 읽었고, 미국 아날로그 이동전화 벤처기업을 인수, 극비리에 시스템 개발에 이미 착수했던 것이다.당시 200억 원 가깝게 투자한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디지털 전환이 오히려 걸림돌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물론 이후 삼성전자는 CDMA 상용화, 특히 단말기 전략에 ‘올인’ 했으며, 96년 ‘한국지형에 맞는’이란 모토로 지금의 애니콜 신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사업초기에 반대했던 삼성전자가 최고의 수혜를 입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변화를 빨리 알아보고 이에 맞는 대책과 방안을 수립하고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결과가 아닌가 한다.영덕 천지원전도 마찬가지다. 이미 국책 사업으로 결정난 사업이고 진행 중인 사업인 이상 이제는 빨리 변화를 인식하고 이익을 극대화함으로써 지역을 빠른 시일 내에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소모전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그만큼 지역발전의 기회도 늦출 뿐만 아니라 투자도 더디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지금은 세계최고의 원전 운영능력을 갖춘 회사와 세계적 수준의 정비노하우를 갖춘 회사가 원전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몇 십 년 후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영덕에 고마워할 것이며, 영덕의 발전은 한국 원전발전과 함께 세계적 롤 모델로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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