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교육 가족들의 모임이 있어서 광릉 국립 수목원엘 갔다. 단풍은 무지개 색 모자이크로 알록 달록 수 놓여 있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산소 과잉 생산 지역이었다. 잎들이 산소를 품어내느라 숨이 차서 얼굴이 붉으락 누르락 단풍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숲속에 희귀한 크낙새가 천년기념물 197호란 번호를 받아 한 쌍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ㆍ내촌면과 남양주시 진접읍·별내면 등에 걸친 넓은 크낙새 서식지역을 다 돌아볼 수는 없지만 일단 수목원 후문에서 2Km 떨어진 광릉에 가 보았다. 광릉은 조선 제7대 왕 세조가 묻힌 능이다. 나중에 왕비 정희왕후 윤씨도 함께 모셔진 곳이다. 능의 관리를 위해 조선 460여 년 간을 두고 엄격한 보호 제도 하에서 하초(下草)의 채취마저 금지되어왔으므로 숲이 울창하다. 광릉 입구 매표소에 들어서니 속리산 정이품송의 후계목이 버티고 서 있었다. 수관은 벼락을 맞은 것인지 가지가 끊어져 대머리였다. 수령(樹齡) 200년 정도의 노목으로 이루어진 숲을 생활의 필수 조건으로 하는 크낙새에게는 이곳이 훌륭한 번식장소이므로 크낙새 서식지가 천연기념물 11호로 지정되었단다.이러한 울창한 임상은 연중 들새들의 낙원이 된다. 너구리, 다람쥐, 원앙도 보였다.원시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었다.그러나 내가 찾던 크낙새는 볼 수 없었다. 내가 크낙새를 찾는 이유는 희귀하기도 하지만어머니의 태몽 때문이었다. 나를 잉태하고 딱따구리가 붉은 벼슬을 세우고 소리치는 모습을 꿈 속에서 보았다고 한다. “너는 무슨 벼슬을 할 것 같다”고 하시면서 가끔 씩 태몽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 붉은 벼슬의 딱따구리가 바로 크낙새이기에 더 궁금했다.서식지에 왔으니 혹시나 싶어 살펴 보아도 크낙새는 보이지 않았다. 크낙새는 우는 것이 클락 클락하고 운다고 딱따구리과의 새 이름을 크낙새라고 부른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클락새라고 부르고 광릉 숲에 사는 사람들은 콜락새라고 불렀다. 광릉 숲을 지키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콜락새를 보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6.25전쟁 전에는 몇 마리 보였는데 이제는 나처럼 늙었는지 도대체 나오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섭섭해 하였다. 그런데 크낙새는 수컷이 사랑이 더 많다고 한다. 먹이를 새끼에게 준 다음 둥지 내에 체류하는 시간은 3 대 7의 비율로 수컷이 훨씬 오래 새끼를 품고 있단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애비로서 부끄러웠다.유난히 붉은 단풍을 바라보며 샛노란 은행잎이 길바닥에 층층이 쌓여 있어 미끄러지기도 하였지만 숲길에는 도토리가 지천으로 떨어져 발바닥 지압을 해주는 역할도 하였다.사람들에게 밟혀서 깨어진 것도 있고 스스로 싹을 내려고 벌어진 것도 있었다. 어머니는 붓 글씨를 잘 써서 동네 혼사가 있으면 사돈지와 문안지를 써주시면서 늘 나에게 큰 꿈을 심어주셨다. 숲은 어머니의 품 그대로였다. 그 속에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소원이 담겨 있고 태몽으로 꿈꾸었던 크낙새가 어디선가 클락클락하고 울고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광릉 숲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이다. 세상에서 소중한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나는 과연 크낙새처럼 고고하고 소중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