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지나서도 지지 않는 가랑잎늦잎이다가지에 붙어는 있지만 이미 죽은 목숨감전될 일 없고기별하면 가끔 닿기도 하는 외딴섬조차 될 수 없는 잎늦꽃은 색깔도 잃고꽃잎끼리 더껑이로 말라붙어서꽃대를 떠나지 못하는 꽃일까아니다제때 피는 꽃들 다 지고 난 뒤 한참 뒤에홀로 피어서불 한 번 질러 보는 꽃이다숨어서만 피던 산당화가말복도 지난 길목에서 드러내 놓고 피는 것처럼아들 딸 다 키웠으니 무서울 게 뭐 있느냐면서바람 부는 날담대하게 집을 나서는 여자다◆시 읽기◆
시인은 아들 딸 다 키웠으니 무서울 게 뭐 있느냐는 중년여자의 객관적상관물로 제철이 지나 뒤늦게 핀 늦꽃을 가져왔다. 유머러스하지만 꼭 맞는 변용이다. 살림밖에 모르는 전업주부에게도 여자라는 꽃은 늘 숨어있다. 남편과 자식이 알아봐 주지 않는 꽃이다. 가족이라는 가지에 붙어는 있지만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 감전될 일 없고, 기별하면 가끔 닿기도 하는 외딴섬조차 될 수 없는 늦잎이다. 하지만 제 색깔을 잃고도 결코 가지를 떠나지 못하는 늦꽃이다. 제대 피는 꽃들 다 지고 한참 뒤에 홀로 핀 늦꽃이 바람 부는 날 집을 나선다. 어디로 갈까? 요즈음 문화센터마다 갖가지 프로그램과 주부들이 넘쳐나고 있다. 잊고 있던 자신의 꽃을 피우는 시간이다. 간혹 건전하지 못한 쾌락에 빠지는 경우들도 있다지만, 거의 대부분은 꼭꼭 묻어두었던 자신을 자신만의 꿈을 실현하고자 집을 나서는 여자들이다. 센터에서 배운 인터넷으로 정보검색도 하고, 카페 드나들며 태그에 영상과 음악 올리고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여자, 깨알 같은 핸폰 문자로 메시지 날릴 줄 아는 여자. 책도 읽고, 시도 읽고, 눈과 꽃, 단풍과 석양에 감동하는 녹슬지 않는 감수성을 가진 여인. 옅은 화장에 세련미를 풍기는 여인, 살아온 연륜이 품위로 들어나는 여인의 모습으로 온전한 자기시간을 즐기다가 더 나은 모습으로 가정생활에 복귀하는 꽃이다. 숨어서만 피던 산당화가 말복도 지난 길목에서 드러내 놓고 불 한 번 질러 보는 늦꽃, 바람 부는 날 담대하게 집을 나서는 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