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족 묘소에 시제를 지냈다. 영주댐 건설로 인하여 7대조 이하 선조의 가족묘를 조성하여 집안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었다. 시제를 한자리에서 모시니 그간 못 나눈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많았다. 그리고 종택 추원사에서 열린 조상님의 529회 추향제(가을 불천위 제사)에 참례하였다. 참례 후 유물각에서 조상님 영정에 재배하고 각종 유물을 관람하면서 종손으로부터 전통과 역사 해설을 들었다. ‘종가집 종손 불천위 사당 제사 외손봉사’ 하면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도 있지만 선조들의 앞선 의식과 문화를 듣고 감명을 받았다. 우리가 역사 교과서 논쟁과 함께 몇 가지 교훈을 현대적 의미에서 되새겨보고자 한다.먼저 불천위(不遷位) 제사에 관한 것이다. 불천위제사란 조상의 얼을 기려 대대손손 영원히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필자의 직계선조인 장말손(張末孫, 1430-1486)공은 임금이 공신 등에게 하사하는 국가불천위를 받았다. 그 후 지금까지 530여년간 거르지 않고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전란과 풍파 속에서도 제사를 이어온다는 것은 요즘 세태에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제사를 이어온 정신은 후손들이 화합하고 살아있는 충효 교육이라고 생각된다. 둘째로 ‘초상화(肖像畵)’와 관련된 이야기다. 흔히들 방송 프로인 ‘진품명품’에서 초상화가 고가로 매겨지는 것을 본다. 임금이 공신이나 고위관료에게 도화서 화원을 시켜서 그려준 초상화는 복식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장말손 초상화는 530년이 넘어 보물로 지정되어있고 천연안료를 써서 지금 봐도 수염 올 하나하나가 생생하다. 그리고 개모본(改摹本)도 문중이 발의하고 국왕이 화원을 시켜 그려준 200년이 넘은 소중한 자산이다. 바로 조상들이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한 증거이다. 그리고 ‘이시애의 난’ 평정 이후 기념행사 자료인 ‘적개공신회맹록(敵愾功臣會盟錄)’에는 당시 45명의 공신 중 참석자들의 서명이 들어있다. 요즘보다 더 기록을 중시하여 최소 45장 이상을 만들었는데 그중 제대로 보존되어 역시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셋째로 ‘외손봉사(外孫奉仕)’와 남녀평등 의식이다. 외손봉사란 외손이 외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임란 전 조선 전기에는 남녀평등 의식이 강하였다. 재산을 나눌 때도 남여 차등이 크지 않았고 대를 잇기 위하여 양자를 들이는 것도 법상 엄격히 제한하였다. 예를 들어 조선 초기 문경동(文敬仝, 1457-1511)공은 당시 영주 땅을 대부분 소유한 명문귀족이었다. 아들은 없지만 딸이 둘 있어 법상 양자를 들일 수 없었다. 이에 따라 필자의 방계 조상 한분이 외손으로서 제사를 맡게 되었고 500여년간 계속하고 있다. 불과 한세대 전까지만 해도 딸이 많아도 양자를 들이거나 씨받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얼마나 앞선 평등의식인가. 그리고 직계조상 제사도 사대봉사하기 어려운데 외가 조상을 계속 모시는 것 또한 남녀평등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역사야말로 과거의 전통에서 바른 교훈을 얻기 위해서 소중하다. 최근 역사 교과서 문제가 화두이다. 통합 국가교과서로 국정화하고 논란이 되는 근ㆍ현대사 부분을 줄이는 것이 정부여당의 입장인 것 같다. 선진국가로 가는 길목에서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은 자연스러운 만큼 역사 논쟁 자체는 그리 우려할 것이 아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복고화되고 극단적인 당파싸움을 통하여 망국의 길을 걸었고 친일파와 독립운동이 혼재되었다. 해방 이후 좌우익이 혼란한 와중에서 남북한은 생존을 걸고 체제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친일 문제를 적당히 덮자고 하거나 남한의 정통성을 폄하하고 북한 체제를 우위에 두는 시각은 모두 비판받아야 한다. 혹여 조상의 구린 과거를 숨기거나 정권 창출을 위한 노림수가 숨어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살아있는 교훈을 주는 근현대사를 덮고 봉합하기보다 비중을 늘려야 한다. 따라서 1년 정도 시한을 두고 보수와 진보가 각자 이른 바 드림팀을 구성하여 제대로 된 교과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미국 프로야구 선수 연봉협상처럼 어느 쪽이 설득력이 있는지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다. 어느 편이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교과서를 쓰게 되어 갈등도 줄어들 수 있다. 역사를 잊어버리거나 과거 역사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 또한 소중한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학교에서 배운 수많은 교과 지식들은 졸업 후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역사 문제는 다르다. 선진국일수록 어떤 방법으로든 역사를 더욱 열심히 공부한다. 다행히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프로가 많이 생기고 인문학도 관심을 끌고 있다. 먼저 가까운 내 조상님과 지역 문화유산들도 소중히 되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논쟁을 오도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건전한 공론으로 이끌자. 열정이 있고 미래가 밝아야 역사 논쟁도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호가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하나의 성장통이자 등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각자가 바로 직시하고 치열하게 탐구하여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