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내려 가는 물처럼 시간은 이렇게 가을의 문턱에서 머뭇거린다. 낮은 짧아지고 길어지는 밤의 은하수는 배꽃처럼 비단 물결로 흐른다. 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구름처럼 쉼없이 지맥을 짚으며 바뿐 걸음을 걷는다. 유성은 가끔씩 내려앉고 별들의 눈짓과 묵언은 사랑의 웅변이다. 길 따라 분주한 차들은 한 여름 우뚝 자란 가로수를 외면한 채 절제를 잃었다. 구김살 없는 가을 햇살은 그래도 고추 밭 자락에 앉아 유락에 탐닉한다. 햇빛이 애무하는 고추는 얼굴에 홍조를 띤다. 밭 이랑에 앉아 가슴을 열어 젖힌 아낙네는 즐거운 노래로 여름 끝자락을 잡는다. 달빛은 구름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보름이 오면 풀위의 이슬을 쓸어 송편을 빚는다. 가려서 취할 줄 아는 새들은 보금자리를 틀어 후세들을 보듬는다. 바람은 또 한번 태아의 몸을 핥은 후 떼지어 날아가기에 바쁘다. 강물에 띄우는 뗏목처럼 연녹색의 잎들은 유유히 견포(絹布)가 되어 온 산야를 물들인다. 색양이 달라져 자리를 옮길 때가 된 잎새들은 멋있는 낙법을 배운다. 절제할 줄 모르던 더위는 갈길을 찾아 떠났다. 허수아비를 향해 곁눈질하던 이름 모를 새들도 함께 떠날 준비를 한다. 유창하고 구김살 없는 소리로 숲을 채워낸 매미는 절제의 미덕을 갖추고 조용하다. 민둥산 저 너머로 망둥이처럼 뛰어놀던 노루도 향족이 사는 숲속으로 떠나버렸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가 이를 듣고 맞장구치듯 산새가 노래를 그치면 숲도 또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는 것일까 기묘한 교향곡 같은 대자연의 광경을 바라보면 그냥 침묵의 눈물이 흐를 뿐이다. 거처없는 집시처럼 빗나간 탄환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흐르는 강물처럼 아직도 발원하는 곳을 찾아 헤맨단 말인가? 이제는 머무르는 법도 배워야지, 수원지의 물과 하류의 물이 다른 점이 있다면 정화도일진데 내가 따라 흐르는 강물은 수원지의 물과 얼마나 다르게 탁해졌을까? 흐르는 강물은 하늘이 정한 길을 가기에 침착함을 잃지 않겠지. 꽃을 피우고 가지를 늘이고 모양도 다르게 생의 잔치를 벌인 격류 이제 머물러야 하는 곳에서 절제되고 정함이 없는 시간에 정리 할 때가 되었다. 더위도 아쉬워하는 9월 첫날에 흘러가는 형산강 가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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