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운다.
이 가을밤을 적시는 고요한 눈물
나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가슴속으로 울 때가 있다.
빠알갛게 혹은 노오랗게
한 해의 마지막으로 찬연한 의상을 입고
너는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먼 길을 떠나는 한 순간
은은히 가을바람을 데리고 가는
저녁 종소리
단풍잎을 적시는 귀뚜라미의 고요한 눈물
나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별숲에 내리는 하늘의 말을 받아 적는다.
▲ 박종해 / 시인. 아호는 송당(松塘). 1942년 울산 출생. 성균관대 영문과 졸업. 1980년 계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울산문협 회장·울산예총회장·대구동부여고 교장 등 역임. 현 울산북구문화원장. 시집『산정에서』·『풍매』등 11권. 이상화시인상·예총예술대상 외 다수 수상.
시의 산책로: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본능적으로 외롭다. 특히 가을밤은 생태적으로 고요하거나 쓸쓸하기에 그 밤의 정취에 빠져 고요의 힘에 압도되고 나면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가슴 저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나잇값을 하는 것이 된다. 그 소리는 유한한 인생을 인정하여 언제든지 떠나갈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메시지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두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준엄한 소리로 받아들이는 혜안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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