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 없이 바닷가 민박에 들러
하룻밤을 자고난 아침
비누와 수건을 찾다가 없어서
퐁퐁으로 샤워를 하고 행주로 물기를 닦았다
몸에 행주질을 하면서
내 몸이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뼈와 피로 꽉 차 있는 가죽그릇
수십 년 가계에 양식을 퍼 나르던 그릇
한때는 사람 하나를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1960년산 중고품 가죽그릇이다
흉터 많은 가죽에 묻은 손때와
쭈글쭈글한 주름을 구석구석 잘 닦아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오래오래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 읽기◆
공광규 시인의 시편들은 대부분 일상에서의 깨달음들이다. 결코 어렵지 않은 그의 시편들을 읽노라면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에서 존재의 깨달음을 찾아내는 시인의 통찰과 예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여행지의 민박집에서 행주로 몸을 닦는 순간에도 견자(見者)의 눈을 놓치지 않는다. 몸은 사람을 담는 가죽그릇이라는 발견이다. 1960년산 중고품, 흉터 많은 가죽에 묻은 손때와 쭈글쭈글한 주름을 구석구석 잘 닦아 오래도록 사람을 담고 싶다는 말로 마음닦기를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사전적 의미는 ‘두 발로 서서 다니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며, 문화를 향유하고 생각과 웃음을 가진 동물’ 이다. 육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이고, 육체가 건강해야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듯이 영혼과 정신과 육체의 삼위일체가 사람이다. 생각을 담는 그릇이 깨끗해야 깨끗한 생각을 담을 수 있고, 사람을 담는 가죽그릇이 깨끗해야 맑고 깨끗한 영혼을 담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몸도 생각도 마음도 맑고 깨끗해야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쾌락에 빠지기 쉬운 육신이다. 물질에 지나지 않는 가죽그릇을 사는 동안 쉼 없이 잘 닦아서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오래오래 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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