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로 예정된 학사장교 5맥 임관 30주년 행사는 메르스로 인하여 불가피 연기합니다.’ 현충일 학사장교 동기 카톡방에 뜬 문자이다. 이로서 동기생 천백여명과 가족들의 한마음 찬치는 후일을 기약하게 되었다. 아직 젊고 장교 출신으로 그까짓 메르스가 문제일까 하는 생각도 있어 아쉬웠지만 9월 12일로 개최하게 되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한 필자는 1984년 공직에 입문하였다. 그리고 건전한 남성이 가야하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서 리더십도 키우기 위해 1985년 3월 학사장교에 지원하였다.
임관 시 육해공군 선택권이 있었으나 과감히 육군을 희망하여 보병 소대장으로 배치되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고시 출신으로 보기 드문 보병 장교가 되었다. 반면 6개월 단기복무가 가능한 석사장교라는 제도가 있었고 군 출신 전직 두 대통령의 두 아들도 이 제도의 혜택을 누렸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입소한 기수에서는 훈련강도가 현저히 약했고 주말에 그 아들을 위문하기 위한 군 장성들의 헬기가 끊이지 않았다는 얘기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 이후 특혜시비 끝에 석사장교 제도가 폐지된 것을 보면 3년간의 보병소대장 생활은 일생의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광주 보병학교 훈련을 거쳐 그해 가을 도착한 울진 바닷가 소대생활은 긴장과 설렘이었다. 4.3km의 모래와 산길을 하루 밤에 순찰 돌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 처음에는 철석철석 하고 들리던 파도소리도 이내 들리지 않게 되었고 겨울바다는 그믐께가 유난히 바람이 매섭고 추웠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 소대가 사고뭉치의 소대여서 나이도 상대적으로 많고 인생 경험과 리더십이 나은 필자를 소대장으로 배치하였다고 한다. C일병은 마음이 여렸으나 불우한 가정 문제로 휴가 귀대 직후 전임 소대장 발치에 소총을 난사하였다. 필자는 늘 큰 형님의 입장에서 따뜻한 말을 건네고 관심을 보였다. 타부대로 전출된 C일병 포함 문제 병사 전원이 무사히 제대하였다.
해안의 여름은 그야말로 낭만 그 자체였다. 그리고 물질하면서 특유의 긴 휘파람 소리를 내는 해녀가 건네준 돌문어와 자연산 해삼 전복 멍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가끔 보는 일출은 장관이었고 무한한 에너지를 온 몸으로 느꼈다. 어느 날 새벽 근무를 마치고 귀대하던 병사가 철조망이 뚫렸다는 보고를 하였다. 다행히 자고 있는 동네 어린아이들의 소행임을 확인하여 비상이 해제되었고 잠시나마 가슴을 쓸어내린 시간이었다. 선임병장이나 하사들과 사격 내기를 자주 하였고 필자의 승률은 높은 편이었다. 이후 경주와 청도부대에서 참모를 거쳐 1988년 3월 중위로 3년 만기 전역하였다.
그리고 2012년 10월 대구노동청장 부임 후 드디어 해안 부대를 방문하였다. 울진 월송정 숲에 있던 예비 중대와 소대도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필자를 포함한 5명이 있는 가운데 총기 오발사고가 났었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던 망향 앞바다의 탐조등도 사라졌다.
첫 소대장 근무지였던 사동 10소초 터에도 이제 “207 Mile” 이라는 펜션이 들어와 있었다. 연대장님이 필자의 방문 사실을 알고 나중에 꼭 들려달라고 전해왔다. 울진 원전 안으로 이동한 중대를 들려 부대원들과 같이 오랜만에 군대 밥을 먹고 흥겨운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사비로 준비한 축구, 족구공과 빵을 전달하면서 기념촬영도 하졌다.
마지막 기착지인 1소대는 1968년 10월말 울진 삼척 무장 공비가 3-4일에 걸쳐 3회 침투하였던 요충지를 지키고 있었다. 짧은 하루였지만 인생에 있어 가장 보람 있고 아름다운 하루였다.
2011년 부산노동청장으로 부임하면서는 충열사, 2012년에는 대구노동청장으로는 앞산 충혼탑에 참배하였다. 특히 2013년에는 영천호국원(제3국립묘지) 참배에 이어 영천호국원 초대 명예집례관으로 6ㆍ25 참전용사 다섯 분의 합동안장식을 주관하였다. 그 이후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기관장 명사들이 앞 다투어 명예집례관을 하고 있다. 영천호국원장은 필자가 대구경북에서 호국정신을 일깨우는 촉매제가 되었다고 감사의 서신을 보내왔다.
병역의무를 기피하여 13년째 입국이 금지된 모 연예인의 사례를 보면 그릇된 선택의 결과가 참담함을 알 수 있다.
연이은 북한의 해상도발에 희생된 군인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실망한 유족이 한국이 싫다면서 이민간 적이 있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젊은이들은 병역의무가 면제되는 미국 국적 등을 포기하면서까지 현역복무를 자원하고 있다.
연예인 등의 해병대 입대나 전방 철책선 근무도 큰 화젯거리가 아니다. 21세기 전 세계의 중심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든든한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 영화 ‘국제시장’에 이어 영화인 ‘연평해전’이 개봉되면서 잊어버리거나 소홀히 해온 역사의 소중함이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 지금도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에서 전쟁과 기아의 참사가 진행 중이다. 우리의 역사를 보더라도 전쟁의 참사를 겪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것이다. 정부와 지도층들은 전쟁이든 자연재해든 산업재해이던 간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호국보훈은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피와 땀의 결실이다. 나라가 혼란하고 어려울 때 무얼 요구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솔선 기여하겠다는 국민이 많아질 때 행복한 대한민국의 번영도 앞당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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