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출신 위안부 피해자 김달선 할머니 별세 日 정부 공식적사과 못받고 한많은 생 마감해 김희정 장관 등 정계 인사들 조문 행렬 줄이어 포항 출신인 위안부 김달선 할머니가 지난 11일 밤 한많은 생을 마감해 주위를 숙연하게 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전 포항 북구 모 장례식장. 19살 꽃 다운 나이에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모진 삶을 살다 91세로 생을 마감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인 김달선(91)씨의 유일한 혈육인 만금(78)씨는 영정 속 외로이 남아있는 언니를 보며 눈물을 삼켰다. 지난 11일 오후 9시15분께 포항시 북구 장성동 R요양원에서 한많은 생을 마감한 김 할머니는 70세 때 뇌경색으로 2~3차례 쓰러진 후 건강히 악화돼 대구 요양원에서 3년간 치료를 받아오다 올 4월 고향인 포항으로 옮겨져 투병해 왔다. 동생 만금씨는 “언니는 폐렴이 악화돼 숨을 거뒀다”며 “이젠 아프지 않고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포항시 북구 여남동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19세가 되던 해인 1943년 청어를 팔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흥해장에 나갔다 일본 순사에게 끌려 미얀마 행 배에 태워졌다. 이후 지옥과도 같은 생활과 여자로서 차마 겪을 수 없는 심한 고생으로 두번의 자궁 수술과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1945년 해방이 된 줄도 모르고 일본군과 함께 도망을 다니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생 끝에 배편으로 부산에 도착했다. 1947년 23세 때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상봉했지만 한국전쟁 탓에 남자 형제를 모두 잃는 슬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포항과 강원도 주문진을 오가며 쌀, 생선, 채소 장사로 생활해 오다 50세가 되던 해인 1974년 남편을 만나 대구에서 가정을 꾸려왔지만 남편이 당뇨합병증으로 숨진이후 홀로 살아왔다. 김 할머니는 “평소에 지금도 일본 놈들이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갔다고 한다”며 “죽기 전에 자꾸 이런 이야기(위안부 피해 여성)를 해야 일본 놈들의 사과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김 할머니의 조문을 위해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인선 경북도 경제부지사, 이병석ㆍ박명재 국회의원, 이강덕 포항시장, 이창균 대통령소속 지방자치발전위 자문위원, 차동찬 포항시의원 등 지역 정계 인사들이 대거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김 할머니는 지난 1996년(당시 72세)에 주변의 권유로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 한편 이날 김할머니의 타계로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단 50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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