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서 갈기 휘날리며 진군하는
농밀한 안개의 독(毒)에 부두의 철제난간이 삭아들고
태평양여관 네온사인은 성급하게 점등되었네
사거리에 문을 연 왕대폿집 주인여자의
화석 같은 얼굴도 잠시 은은해지고
목로의 빈 잔마다 새 대포알이 장전되기 전에는
안개 알갱이들이 빼곡 들어앉아 있네
목로와 안개의 틈새로 한물간 어느 엘레지 낮게 새나오네
물결 옆으로 드러누운 흐린 거리에
잘 도열한 가로등의 실루엣, 등(燈) 꼭대기마다
점을 찍듯이 앉은 가난한 갈매기 내 청춘의 새여,
안개는 지치고 지친 나를 잡고는
“그대,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 하고 묻네
혹은 내 가슴을 치네
내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하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