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이 되면 잊혀져 가는 선생님들의 얼굴과 이름을 떠 올리게 된다. 어느 누구나 학창시절에 잊지 못할 선생님 한두 분은 뇌리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잊지 못할 선생님으로 철부지 했던 초등학교 시절 3학년 담임을 하셨던 마음씨 착한 털보 선생님이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늘 친구 같고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아마 지금은 고인이 되셔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계실 것이다.
애칭이 ‘영국 신사’인 중학교 때 사회 선생님도 잊지 못할 스승이시다.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이 수업에 싫증을 느낄 때면 좋은 漢詩(한시)를 한 수씩 가르쳐 주셨다. 간혹 뵈올 때 마다 옛날 추억을 나누면서 그 때 익힌 한시를 외우면 얼마나 좋아 하시는지 모른다. 나에게 한문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해 주신 분이셨으며 팔순이 넘은 연세지만 아직까지 옛날 인물과 풍채를 그대로 유지하고 계신다. 제자들과 함께 백수 잔치 하시기를 기대해 본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두 번이나 담임을 맡으신 김 모 선생님은 대학을 갓 졸업하시고 첫 발령을 받아 오셨지만 학생들의 사정을 잘 헤아려 주셨던 분이셨고 특히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당신께서 담당하신 영어 보충 수업비를 면제해 주셨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으로서 선생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었다. 평상시 술을 좋아했던 당신께서는 안타깝게도 오래 사시지 못하고 수년 전에 돌아가셨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선생님의 영전에 두 손 모아 하얀 카네이션을 올립니다.
스승의 날의 유래는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1963년 5월 26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고 사은 행사를 한 것을 시작으로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변경하여 스승의 날 행사를 실시하여 왔다. 그 후 1973년 국가의 庶政刷新(서정쇄신) 방침에 따라 스승의 날이 폐지되었으나 1982년 스승을 공경하는 풍토 조성을 위하여 다시 부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학부모의 교사 폭행, 교직에 대한 불신, 교원의 사기 저하 등으로 교권이 무너지고 있어 스승의 날 제정 취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을 감안한다면 스승의 날에 대한 선생님들의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 ‘스승의 날’은 스승의 은혜에 대한 보답보다는 선생님의 책무성에 대한 실천과 결의를 다지고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정약용 선생의 耳談續纂(이담속찬)에 ‘經師易得(경사이득) 人師難得(인사난득)’이라는 속담이 있다. 즉 글을 가르치는 스승은 얻기 쉬우나 사람의 인격을 가르치는 스승은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선생은 經師에 해당되며 스승은 人師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선생과 스승의 사전적 의미도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스승은 학생들을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선생님 스스로 스승이 될 때 학생과 학부모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으며
교권 회복은 선생이 스승으로 換骨奪胎(환골탈태)해야 가능하다.
중국 당나라 문인인 한유의 ‘師說(사설)’에 나 오는 ‘師者(사자) 所以傳道授業解惑也(소이전도수업해혹야)’란 구절은 ‘스승이란 道(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치며 의혹을 풀어 주는 사람이다’라는 뜻으로 스승이 가져야 할 자질로 가르치는 것 보다 行道(행도)를 더 중요시 여겼다.
글을 가르치면서 반드시 바른 길, 근본, 仁義(인의), 德行(덕행) 등 도를 실천해야 한다. 잠시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스승 되기가 참 어려운 일이다. 스승의 날을 즈음해서 스승이 되겠다는 결의로 교권 회복의 단초를 만들어야 하겠다.
스승의 날 노랫말에도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중략).
지금은 ‘君師父一體’라는 말은, 사용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의 용어가 되었지만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같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 분출로 인한 인성 지도와 학교 폭력의 증가 등으로 어렵고 힘든 교직 생활이지만 사랑과 인내로 학생들의 미래를 밝혀 주는 스승이 되어야 한다. 사람을 교육하는 일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때론 무기력과 태만이 찾아 올 때면 ‘헨리 반 다이크’의 무명 교사 예찬사의 몇 구절을 읽어보라. “나는 무명 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전쟁에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무명의 병사로다/젊은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명의 교사로다/그를 위하여 부는 나팔 없고/그를 태우고자 기다리는 황금의 마차는 없으며/그의 가슴을 장식할 금빛 찬란한 훈장도 없도다”(중략).
스승의 날을 즈음하여 ‘옛 스승 찾아뵙기 운동’으로 사제의 정을 돈독히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선생님!
당신은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서른네 번째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당신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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