헹어란 걸개이다. 내가 늘 바라보는 헹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파트 공사장의 크레인이고 하나는 나의 서재에 있는 옷걸이다.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는 높은 하늘 위에 헹어가 사방을 유영하면서 물건을 실어올리고 내린다. 긴 줄을 내려서 땅위의 물건을 올리고 내리면서 수십미터 상공에서 해 뜨기 전부터 헹어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몇 밤을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 층수는 올라가고 그 만큼 하늘은 좁혀지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학교에서 천방지축 중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살얼음판을 걸어온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메어달려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간담이 서늘하다. 저 헹어에 매달린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할까 늘 생각해본다. 내가 살기 위해서 저렇게 높이 쌓아 올리다 보니 나의 하늘이 더 좁아지는 것이 아닐까? 지난 추석 때는 서울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 가족들이 와서 작은 방에 설치되었던 2단짜리 헹어를 서재실로 옮겨놓았다. 옷걸이와 바지고리 갈고리가 수십 개 달린 헹어를 서재 방으로 옮기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헹어에 매달린 옷들을 분류해서 재킷은 재킷대로 바지는 바지대로 코트의 길이에 따리 정리하고 헹어를 옮겨 설치 한 뒤 긴 옷은 위쪽으로 짧은 것은 아래쪽에 차례로 걸었다. 휘어진 헹어는 몇 벌의 옷만 걸쳐 있어 등 굽은 늙은이가 남루한 옷을 입은 것 같았다. 길 잃은 바람이 창문가로 불어 들어오면 퇴색하여 펄럭이는 낡은 바지의 모습이 오랜 세월 동안 살아가면서 일그러진 내 몸 뚱아리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나이든 과수원의 사과나무 같기도 하고 늙은 포도의 줄기가 지주에 연결된 철사줄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았다. 창문 쪽에서 빛이 비쳐 드는 각도 그대로 비스듬하게 바랜 자국이 있는 옷과 퇴색된 와이셔츠들은 오랫동안 입지도 않고 걸어놓은 것이기에 옷을 바닥에 쌓았더니 금새 작은 산이 되었다. 헌옷 수거함에 갖다 넣었다. 옷을 갖다 버린 것보다 내 속에 있는 어떤 소중한 것을 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아내 앞에서는 감정에 가림막을 쳐야 했다. 이사를 할 때마다 버리려고 했지만 아까워서 한번이라도 더 입어보고 싶어 다시 보자기에 싸서 이삿짐 사이에 넣어 지금까지 아껴온 것도 있기에 눈 딱 감고 버리지 못하는 아내는 그보다 더 큰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서이다. 헹어에 옷걸이를 다 걸고 난 후 정리된 옷들을 둘러보니 그래도 버렸으면 하는 옷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10여 년 전 스승의 날 대구에 사는 제자가 보낸 옷이 있었다. 방황하며 헤맬 때 자기의 길을 바르게 인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으로 편지도 함께 보내온 것이었다. 내 자식에게 받은 선물보다 더 소중한 옷이기에 아껴 입고 철이 되면 그 제자를 생각하며 꺼내 입는다. 그 제자는 뜻이 굳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ROTC를 수료하고 포병으로 배치된 육군소위가 리더십을 키우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보병장교로 바꿔달라고 요청하고 비무장지대 철책 경계를 순찰하다가 발목지뢰를 밟아 한 쪽 발목을 잃어버렸다. 의족을 해도 걸을 때는 절룩거리며 걷는다. 결혼식 때 신랑 입장을 하면서 절룩거리니까 모든 하객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그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었다. 그런데 달포 전 아내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붙잡고 울었다. 외동딸을 일본 유학 보내고 그는 혼자 살고 있다. 쓸쓸한 그의 모습이 펄럭이는 옷 속에 숨어 있는 것 같다. 헹어에 매달려 그냥 엉엉 울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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