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화단에 버려진 낡은 됫박 하날 주웠지요 모서리가 깨지고 옆구리가 터진 걸 겨우 철사로 옭아매 썼던 날도 한참인 듯했지요 나는 눈에 익은 이 옹색한 애물을 가만 주워들었지요 사월의 화단은 야단을 맞고 쫓겨나온 꽃들의 주둥이가 댓발인데 허술한 됫박은 아직도 뱃구레가 홀쭉했지요 도둑고양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가난을 나무는 제 몸을 내줄 때 얼마나 마뜩치 않았을까요 그러나 사월의 됫박을 들고 오월의 꽃밭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 낡은 오지랖도 볼우물이 터지도록 인심을 옮겨 담던 선량(善良)인 걸 떠올렸지요 허술하고 미욱한 대로 계절을 놓친 봄꽃들은 아직 이마가 뜨거웠기에 그 화사한 절명(絶命)을 고봉으로 주워 담아 반그늘에 부려주고요 어느 날은, 느닷없는 천뢰(天?)의 말씀인 우박을 퍼 담아 겨울을 모르는 꽃밭 귀퉁이에 구메밥처럼 넣어주고요 연못의 금붕어들에게 천천히 녹여먹으라 생색을 냈지요 허술한 대로 이 몸 한 됫박한테도 여독이 생기는 뿌듯한 하루였지요 ◆시 읽기◆ 부유와 풍요 속에서의 나눔보다 가난과 어려움 속에 나누는 정이 훨씬 더 애틋하고, 끈끈하고, 정겨운 것이다. 멀쩡한 물건도 싫증난다는 이유로 마구 내다 버리는 시대, 나누는 인심이 절대 부족한 시대에 시인은 모서리가 깨지고 옆구리가 터져 철사로 옭아매 썼던 낡은 됫박,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낡은 됫박을 주워 다시 꽃을 심고 가꾼다. 근검절약이 미덕인 줄 모르는 물질풍요시대에 시인의 오지랖은 볼우물이 터지도록 인심을 옮겨 담는 선량(善良)그 자체가 아닌가. 도둑고양이도 쳐다보지 않는 가난을 주어다 풍성하게 재활시키고는 허술한 대로 이 몸 한 됫박한테도 여독이 생기는 뿌듯한 하루였다고 말하고 있는 시인은 진정한 사랑을 아는 따듯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분명하다. 허술한 몸 한 됫박이지만 담을 수 있는 정은 무한대이다. 가정의 달, 어둡고 어려운 곳곳마다 나누는 사랑과 정이 넘쳐나는 5월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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