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러일전쟁 종군 영국인 기자 잭 런던이 쓴 ‘조선사람 엿보기’를 읽었다. 인종적 편견이 가미되었지만 망해가는 구한말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놀라운 것은 한국인 마부에게 ‘빨리빨리’하라고 늘 다그치지 않으면 해가 중천이 되어도 출발준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 백성은 수세기에 걸친 집권층의 부패로 용맹성을 잃고 기개가 없다고 보았다. 왜놈보다 등치가 크지만 매가리가 없고 게으르고 무능력하여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는 반면 중국인과 일본인은 매우 근면하여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거라고 찬사하고 있다. 일본인의 근면성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공산화되고 문화혁명을 겪은 중국인을 염두에 두면 우리는 중국인이 게으르고 위생적이지 않다는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해방 이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들은 모두 미주대륙 호주 등 여러 나라에 이주하여 죽기 살기로 일하였다. 미국 서부철도 건설은 이른바 중국인 쿠리(苦力)에 의해 이루어졌다.
북한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공산주의 사회에서 일상화된 흘린 피땀의 양과 무관한 이른바 고루 나누어먹기가 개인과 사회의 활력의 원천을 없앤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은 비록 초창기에 사회물정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누구보다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필자가 2007년 여름 금강산 관광을 갔을 때의 경험이다. 관광지에 내릴 때마다 옥수수 등을 파는 아주머니들의 호객행위가 우리나라 여느 유원지 이상이었다. 목소리도 높고 물건과 거스름돈을 주는 속도가 이른바 ‘빨리빨리’ 였다. 필자가 지갑에서 돈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물건과 거스름돈을 내손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판매량에 따른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그리 놀랍도록 변신하였다고 한다.
새마을운동 이전의 우리 농어촌은 백년전과 다르지 않았다. 농한기는 물론 농사철에도 술과 담배 도박이 일상화되어있었다. 겨울 지나면 논밭의 주인이 바뀐다던지 전문 도박꾼들이 시골을 돌면서 사기도박을 하여 단속뉴스가 연일 기사화되곤 하였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도입되고 독일 탄광광부 간호사 송출 중동 건설 붐 등 성취동기가 생기자 우리 국민들의 근면성과 성취동기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혹서와 악천후를 무릅쓰고 불철주야 일하면서 고속도로 공장 발전소 등 건설에 공기를 단축하고 경비를 절감하였다는 것은 이제 그리 큰 뉴스 꺼리가 되지도 않는다.
이제 이러한 근면성을 바탕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옥스퍼드대사전에 ‘빨리빨리’가 등재되고 한국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 감 잡았어’라는 말은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동시에 실행에 옮기는 영민한 한국인의 최대 강점이자 성장동력이었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 성장 동력의 원천이자 세계인이 칭송해온 우리의 ‘빨리빨리’ 정신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졌다. 나아가 모든 우리의 구조적인 모순과 문제의 주범 격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이른바 ‘빨리빨리’를 문제의 주범으로 몰아치는데 ‘대충대충’이 더 큰 문제이다. 불법개조와 과적 조타 실수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고 부실과 무능이 기저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는 저비용으로 많은 이익 추구 고객은 값싸게 빨리 가고자 한데 있는 것이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그 큰 배의 선장은 왜 박봉이고 임시직이었는가. 1등 항해사가 중량초과를 이유로 승객이나 화물을 거부할 수 있을까. 3등 항해사는 차량을 안전하게 묶기 위해 출발시간을 무한정 늦출 수는 있을까. 승객은 돈을 더 내더라도 좀 더 안전한 배를 선호하고 화물차 등에 과적하거나 표 없이 동승한 경우는 전혀 없는가. 다른 배는 모두 안전하고 세월호의 부실만 관리당국이 눈감아주었는가. 안전이 제일이라고 말하고 구호만 외칠 뿐 지금도 행동은 달라진 적 없다는 외신기자의 평가는 듣기가 부끄럽다.
더 큰 세월호가 더 빨리 날고 달릴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따라서 우리사회는 안전과 관련하여 근원적 문제 제기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사건 사고에 지나치게 매몰된다면 정작 논의는 산으로 바다로 갈라져 갈 것이다.
선진국가로 가려면 시대정신과 가치 담론에도 차분히 기를 기울이고 사회적 합의를 모아나가야 한다. 안전에 공짜는 없고 값이 싸면 비지떡(고위험)이다.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안전을 추구하는 선진 시스템을 갖출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적당히 하는 시늉하고 문제가 생기면 손가락질하고 희생양을 찾을 것인가. 사고 시 담당자가 초인적 능력을 보이거나 희생되는 것이 마냥 미덕일 수는 없다. 보통 사람이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제대로 가동될 수 있는 시스템에 투자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야 사고가 나면 책임도 기꺼이 지고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드는데 앞장서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만약 시스템도 못 만들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도 기피하는 어영부영 책임전가를 가져온다면 소 잃고 외양간도 태우는 격이다.
국민안전처 신설은 문제 해결의 시작과 토대 마련에 불과하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일의 성과를 내면서도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이른 바 제대로 된 ‘빨리빨리’로 한국인의 장점을 살려 세계의 중심국가로 도약해나가자. 대충 대충이 아닌 시스템화된 ‘빨리빨리(신속성)’는 사고뭉치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여전히 한국인 최대의 강점으로 계속 발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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