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욕심 때문에 일어난다.
꼭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기는 것은 사안에 따라 패배를 의미 하기도 한다. 때론 조금 속아주면서 밑지고 살면 마음이 편안함을 느낄 때가 많다. 마음의 편안함이 건강의 첩경이다. 걱정거리가 있을 때는 의욕 상실과 함께 밥맛도 없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음식을 잘 먹는다고 건강이 유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건강은 걱정 없는 생활을 바탕으로 음식, 운동, 원만한 인간관계, 자연과의 관계 등 여러 요소들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결과이다.
밑지는 것은 마음을 편하게 하고 마음이 편하니 복이 스스로 생기고 먼 곳에 있는 복도 굴러 들어온다. 그리고 하는 일도 술술 잘 풀린다. 마력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喫虧(끽휴, 손해를 봄) 是福(시복, 복이다 또는 복의 시작)’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밑지는 것이 곧 복이다. 밑지고 사는 사람은 결국에는 좋은 친구와 재물이 따르고 세월이 갈수록 향기로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 날 수 있다.
밑지며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밑지고 살아야 복을 받는다
밑지고 사는 사람은 남을 먼저 배려하고 자기가 손해를 보며 덕의 언덕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기심이 많은 사람은 인색하고 옹졸한 인생의 연속이다.
인색함이 깊어지면 흉이 되고, 흉이 깊어지면 후회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사람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적당한 욕심은 활력을 불어 넣어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불러 들여 재앙을 자초하기도 한다.
욕심은 개인이 살아온 생활환경, 타고난 성격, 개인의 절제와 인내심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다.
다음은 ‘끽휴시복’에 관한 일화이다.
청나라 판교 정섭이 유현 현령으로 있을 때 아우가 편지를 보내 왔다. 집 단장 때문에 이웃과 송사가 붙었으니 현감에게 청탁해서 이기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형 정섭은 답장으로 시 한수를 썼다. “천리 길에 글을 보내는 것은 담장 하나 때문이니 담장하나 양보하면 또 무슨 상관인가? 만리장성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당년에 진시황은 보지도 못했다네” 이와 함께 ‘喫虧是福’ 네 글자를 써 보냈다. 그리고 ‘가득참은 덜어 냄의 기미요, 빈 것은 채움의 출발이다. 내게서 덜어내면 남에게 채워진다 밖으로는 인정(人情)의 평온을 얻고 안으로는 마음의 평안함을 얻는다 평온하고 편안하니 이것이 바로 복이 아닌가?’라고 풀이 글도 썼다. 아우가 부끄러워 송사를 포기 했다고 한다.
채근담에 ‘사람의 괴로움은 끝없는 욕심에 있다. 자기의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면 마음은 항상 즐겁다’라는 말은 편안한 생활을 위해 삶의 지혜를 가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밑지는 것이 곧 복이며 남는 장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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