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토박이 우리말은 땅이름에 가장 많이 담겨 있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땅이름, 사람이름에 우리말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보다도 훨씬 이전의 일이다. 다만 우리글이 없어 한자를 변용한 이두, 향찰 등 중국식으로 표현했을 따름이다. 우리에게 있어 우리말은 가장 아름답고 감칠맛 나며, 세상 어떤 언어보다 우리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해 내는 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말은 민중 속 깊이 뿌리내려 오다가 삼국통일 이후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들어오면서 1차 시련을 맞게 된다. 2음절 중국식 행정구역 명칭이 토박이 이름들을 마구 밀쳐내면서 구전되던 토박이 이름들이 당치도 않게 한자식으로 바꿔지고 말았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양반이다. 우리말 지명의 차음(借音)과 차훈(借訓)을 따랐으므로 원래 뜻을 유추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지말, 음지말이 양촌리(陽村里), 음촌리(陰村里)로 바뀌었으니 한자 속이지만 그 의미는 잘 투영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 한절마가 대사동(大寺洞)이 되었다든가, 용바우가 용암리(龍岩里)로 되어 있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다. ‘물돌이 섬’이라는 뜻의 무섬이 수도리(水島里)만 되어도 좀 이상한데, ‘조그마한 섬’의 조개섬이 합도(蛤島)가 되고 ‘구불구불 넘는 고개’ 구름재가 느닷없이 운현(雲峴)이나 운치(雲峙)로 구름이 되어 하늘에 떠다닌다. 백(白)자가 들어가는 지명 즉, 태백산 소백산, 함백산의 백은 에서 와 ‘희다, 깨끗하다, 밝다’는 뜻이 담겨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산 이름에 ‘백’자가 많은 것은 산을 신성시한 우리민족의 정서라고 볼 수 있다. 또, ‘ ’은 ‘ 다 ’에서 온 말로 ‘가파른 산’이란 뜻인데도 월출산, 월악산, 달밭골[月田洞]은 모두 달월(月)자를 쓰고 있다. 달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은 물론이다. 가파른 산의 ‘ 뫼’가 달라뫼→ 달나뫼가 되면서 달월, 날출, 묏산 해서 월출산(月出山)이 된 것이란다. 억지이다. 달보다는 훨씬 많아야 할 ‘해’ 관련 지명이 많지 않다는 것은 달 관련 이름들이 달[月]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논을 일컫는 가 한밤이로 대야(大夜)가 된다면, 그리고 큰배미를 대사(大蛇)라고 하여 뱀이 많은 곳이 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더구나 넓은 논배미의 가 날배미로 되면서 비사(飛蛇)가 된다면 뱀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웃기는 소리가 되고 만다. 라는 말은 ‘작고 아담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쁜 우리말이다. 앗자산이 아차산으로 될 때까지만 해도 ‘작은 산’이라는 뜻을 지닌 애교스러운 지명이다. 아지동, 애얏고개 등도 작은 마을, 낮은 고개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다. ‘작은 냇가’ 를 소천(小川), 소진(小津)으로 부르는 것은 그래도 애교이다. ‘큰 무덤’ 또는 ‘꼭대기 무덤’ 이 말무덤이 되면서 마총(馬塚)이 된다든가, ‘큰 마을’이란 뜻의 이 감곡(甘谷)으로 된다면 이건 둔갑 수준이 아닐까. ‘가까이’라는 뜻의 이 엉뚱하게 송내(松內)로 판 박히고 ‘절벽’이라는 가 벼락바우(雷岩)가 된다면 이건 진짜로 벼락칠 일이다. 매봉산은 전국에 수 백 군데나 된다. 매가 많아서 라는 둥, 임금의 매 사냥터가 매봉이라는 것은 억측이다. 매가 얼마나 많아 매봉이 되며, 임금은 전국을 싸돌아다니며 매사냥만 했단 말인가? 매봉은 뫼에서 와 ‘산 모양을 잘 갖춘 산’이라는 뜻임을 알고 보면 산 모습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노룻재, 노루목에도 당연히 노루는 없다. 노루는 느린, 또는 좁고 낮은 고개를 말하기 때문이다. 지명은 그 지역의 자연과 역사, 풍속 등이 충분히 스며들었을 때 자연스러운 지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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