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다시피 우리의 건국이념은 弘益人間(홍익인간)이다.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에 담긴 인간애의 위대함과 숭고함 앞에서는 늘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런 의미에서 표현은 다르지만 公益廣告(공익광고)에 담긴 뜻 또한 공공을 널리 이롭게 하는 광고라는 뜻에서 매우 훌륭한 표현이다. 바야흐로 자본이 神(신)의 자리에 올라 절대자의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적 흐름에 무의식적으로 휩쓸려가는 삶에서 공공의 문제를 인식케 하고, 더불어 성찰적 삶을 견지하게 하는 소소한 공익광고에 눈과 귀, 가슴을 여는 순간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므로 나는 - 충분히 만족할 수 없는 공익광고를 접하고 있더라도 - 공익광고는 ‘나에게서 우리로’향하는 시선의 이동이자, 가슴의 이동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공익광고 중에서도 보고, 들을 때마다 특히 불만과 우려를 자아내는 공익광고가 있다. 그것은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성폭력범죄 예방에 관한 공익광고이다. 대충 설명하자면, 어린 여자아이가 혼자 어두운 길을 걷고 있는데 그 뒤에 `으스스한 분위기`의 성인남성이 따라 걸으면서 말을 시킨다. 그러나 그 여자아이는 자기 이웃에 성범죄자가 있다는 것을 성범죄자 신상공개를 통해 인상착의를 파악하고 있었던 상태였으므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서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 광고의 문제는 무엇일까? 첫째, 성폭력 범죄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 성폭력 범죄가 거의 대부분 밤에 일어난다는 것은 잘못된 통념일 뿐이다. 성범죄가 일어나는 특정 장소와 시간은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방과 직후에도, 새벽에도, 한 낮에도 성범죄가 발생한 사건들은 수 없이 많다. 둘째, 자신이 사는 동네에 성범죄자가 있다고 해서 그 인상착의를 완벽히 기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하물며 얼마든지 거의 완벽한 변장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머리카락의 색깔을 바꾸거나, 스타일을 변형하거나,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착용하거나, 수염을 기르거나, 자르거나 등 수많은 변장이 가능한 상태인데 공개된 인상착의만으로 짧은 순간에 성 범죄자를 인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셋째, 태어날 때부터 성범죄자인 사람은 없다. 이 광고는 성범죄가 마치 성범죄 전과자를 중심으로 발생한다는 인식을 주기 쉽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성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그 위험성을 알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성폭력은 왜곡된 성인식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가해자의 범위를 이렇게 단순화시키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실제로 전체 성폭력범죄의 83%는 피해자가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되며, 그 중에서 친족 성폭력은 13.5%이다.(한국성폭력상담소, 2006년 상담통계) 넷째, 성폭력은 물리적 힘이 약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거의 대부분 자행되지만 실제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발생한다. 어린 여자아이가 성폭력 피해자의 가장 일차적인 위험대상이긴 해도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령과 성별은 다양하다. 최근 급격하게 발생하는 군대 내 성폭력의 문제는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음에도 성폭력 피해자의 범위를 이렇게 단순화시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광고는 문제적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성폭력 발생 세계 3위 국가이다. 고소확률이 6.1%(1998년 기준)에 불과함에도 세계 3위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폭력 피해자 책임유발론’과 같은 왜곡된 성인식이 뿌리 깊은 나라에서는 신고율 역시 낮을 수밖에 없다. 만약 성폭력을 당한 한국여성들이 숨기지 않고 신고한다면 수치스럽게도 세계 1위의 성폭력 발생국가가 되는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이유에서, 성범죄 예방에 대한 공익광고의 내용구성에는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성폭력은 극히 잔인한 폭력이며,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라는 점, 어떠한 경우에도 ‘성폭력 당할만하다, 당해도 싸다’는 인식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하게 주지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이유에서도, 성범죄를 당해야할 이유는 결코 없으며, 그 누구도 성폭력을 자행할 권력 또한 결코 가질 수 없음을 알리는 광고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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