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이 밭에 처음 오신 분입니까?
아니면 오늘을 포함해서 몇 번 다녀가셨던 분입니까?
고사리 꺾는 재미에 이곳까지 걸음하신 당신에게 글자를 적을 줄 모르는 우리 어머니를 대신해서 몇 마디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막 고사리가 많은 걸 확인하고 계신 당신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조그만한 밭이 우리 어머니에게는 지난해 쏟아 부었던 노력의 결과를 확인하면서 봄부터 초여름까지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그런 아름다운 곳입니다.
진달래가 피고, 소쩍새가 울고, 사과 꽃이 필 때면 밤새 고사리가 많이 자랐을 거라고 기대하며 큰 앞치마와 작은 마대자루까지 챙겨서 허리에 차고 아픈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서 이곳 건네말까지 두 번 세 번을 쉬면서 30분 만에 겨우 올라오십니다.
매일 매일 한주먹씩 꺾어 모은 고사리들은 일일이 다듬고, 가마솥에 삶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소쿠리에 널어 말리기를 반복해서 동그랗게 말아 놓았다가 제사 때 정성스레 준비해서 조상님 제사상에 올리면서 중국산 대신 직접 채취한 것이라 더 흡족해 하시고, 서울, 부산, 울산, 창원으로 각각 살림을 차려나간 6남매에게 귀한 거니까 맛보라고 골고루 나눠주시고 그래도 남으면 5일마다 열리는 안의장에 내다 팔아서 용돈도 하십니다.
그렇게 3개월 정도의 고사리 철이 지나고, 여름철이 지나고, 벼와 사과 수확이 끝날 무렵이면 우리 어머니께서는 뒤에 있는 산에서 긁어모은 낙엽으로 겨울추위를 대비해서 고사리 뿌리를 덮어주고, 봄에는 잡풀도 뽑아주면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글자는 잘 몰라도 고사리 싹이 어디서 나오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싹을 밟지 않으려고 작은 밭이지만 다니던 길로만 다니면서 적당히 큰 것들만 선별해서 꺾습니다.
그런 우리 어머니께서 아침 일찍 밭에 올라 오셨을 때 밤이슬을 맞고 쑥쑥 자란, 이슬 머금은 통통한 고사리를 당연히 먼저 꺾어야 되는거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으로 인해서 한 앞치마 꺾어갈 소박한 욕심으로 힘겹게 먼 걸음 하신 우리 어머니께서 빈 앞치마로 실망해서 내려가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지금껏 경고문이 없어서 몰랐다고 믿겠습니다.
잘 모르고 들어 온 거라 믿겠습니다.
우리 동네사람이 아니라고 믿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 ps: 그래도 고사리를 꼭 꺾어가고 싶다면 우리 동네를 바라봤을 때 오른쪽 산등성이와 도로건너편 사과밭 뒤 야산에 야생 고사리 밭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께서 지금처럼 다리가 아프지 않고, 조금 더 젊었을 때 자주 가시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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