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흔히 “모를 때는 가만히 있어라.”, 혹은 “가만히 있으면 본전이라도 한다.”는 말을 심심찮게 하거나 듣는다. 좋게 해석하면, 쥐뿔도 모르면 설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좋은 인상을 준다는 뜻이다. 나쁘게 해석하면, 정확한 지식 없이는 그 어떤 경우에도 입을 닫아야한다는 일종의 관습화된 통제이다.
나 또한 일상에서 쉽게 접하던 이 말들을 반성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부터였다. 지방 국립대학에서 교양강의를 시작한 5년 전, 열정과 사명감으로 뭉친 나의 모습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신감 그 자체였다. 비록 강좌 당 80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신청했지만 일방적인 전달로 끝나는 강의가 아닌 에너지 넘치는 토론으로 ‘진부한 수업’의 방식을 극복할 자신!
하지만 수업 시작 5분이 채 되지 않아서 그 자신감은 엄청난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인사조차 겨우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수업분위기를 활력 넘치게 만들고자 시도해 본 농담과 질문들에 대처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나는 ‘무기력’을 보았다. 그렇게 시작한 한 학기를 통해 그들의 ‘무기력’은 타고난 무기력이 아니라 ‘길들여진’무기력이라는 것 또한 깨달았다. 아울러 이 학생들을 결코 비난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까지도.
유치원과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이 아이들에게 허락된 것은 틀린 답, 엉뚱한 질문, 활력 넘치는 태도가 아니라 정답과 조용함이 공손으로 위장된 예의였다. 심지어 틀린 답과 엉뚱한 질문 등에 대한 보상은 거의 대부분 선생님에게 혼나는 경험, 친구들에게 놀림당하는 경험으로 남았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급속도로 진행되는 세계화의 흐름 안에서 미래전망에 대한 유연한 사고, 특히 인간의 창의력을 요구하고 있는데 21세기를 열어갈 그들이나 기성세대인 나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에게는 공간만 바뀌었을 뿐인데 뜬금없이 토론위주의 수업을 실현하려 했던 나의 기획은 그야말로 무모하기까지 했다.
한국교육의 문제가 하루 이틀 거론된 것이 아니므로 때론 교육개혁이 진행 중인 것으로 기대하고 싶고, 착각하고 싶다. 하지만 한국교육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준 놀라운 사례가 불과 몇 년 전에도 있었다.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G20 정상회담 폐막식에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폐막연설을 끝낸 후 질문권을 한국기자단에게 먼저 주었다. 제한된 시간에 세계에서 온 기자단들의 쏟아질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 입장의 그로서는 한국에서 개최된 회의이니 우선 발언권을 한국기자단에게 주는 것은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번, 세 번이나 한국 기자단에게 “한국 기자단, 질문 없습니까?” 라고 묻던 상황에서 한국 기자단에서는 그 어떤 질문도 나오지 않았다. 순간 당황한 오바마와 장내의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그 때, 포부도 당당하게 중국 기자 한 명은 자신이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하면 되지 않느냐고 오바마에게 제안을 했다. 오바마는 다시 한국 기자단에게 물어보고 그 이후에 당신이 질문을 하라고 제안했지만 한국 기자단에서는 침묵만이 흘렀다. 그리고 연이어 미국의 어느 대학 강의실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는 토론수업 영상이 소개된다. 이 사례는 2014년 1월에 방영된 EBS 다큐 6편의 시리즈 중 5편에 소개된 내용이다. 결코 아무나 될 수 없었던 G20 정상회담 취재기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침묵의 현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부인하고 싶지만, 우리의 교육현장에서는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내가 모르는 것을 남에게 들키는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게 하고, 그것은 민폐를 끼치는 행위라고 생각하게끔 한다. 지식은 사교육 시장에서 미리 배워오고, 공교육은 그 지식을 확인하고, 정규졸업장의 의미를 가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놓은 구조 안에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미래가 요구하는 창의력, 적극성, 모험심, 도전정신 등등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에게 차라리 이런 요구를 자주한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학교에 온다. 모르는 것이 들통날까봐, 학우들에게 민폐를 끼칠까봐, 선생님께 예의 없다고 비난 받을까봐... 자신의 어떤 생각도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것이다. 모른다고 가만히 있으면 본전을 찾는 게 아니라 본전을 잃는 것이다. 왜? 그 비싼 등록금 내고 학교에 왔으면 본전은 찾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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