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자신의 장래희망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예인이 되겠다는 아이들이 많았고 공무원이 되겠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장래희망을 임대업(賃貸業)이라고 적어낸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작금의 우리사회 분위기로 봐서 그러할 만도 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임대업이 꿈이라고 적어낸 아이는 똑똑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었을 것이다. 월세나 전세가 무엇인지 부모에게 물었을 것이고 인터넷도 검색해 보고 결국 아이는 세를 받아먹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장래희망이 됐을 것이다. 우리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기야 1970~80년대에는 대학졸업이 곧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모두 논밭 팔고 소 팔아 자식 대학 보내기에 혈안이 됐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자식농사 신화가 점차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우리민족은 본래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것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이젠 금력과 능력, 실력이 성공의 원천이 됐다. 투자보다 투기세력이 활개를 치고 부를 축적하는 일확천금의 시대가 됐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악령도 태어났다.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1위를 차지했다. 통신3사만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모바일산업은 서민이 먹고살만한 직종을 고사시켰다. 고물가가 절약정신을 비웃는다. 대기업의 1%족에게만 더없이 살기 좋은 천국으로 전락했다. 청년 백수는 비극의 그림자에 목이 졸려 헐떡거린다. 신의 직장을 제외하고는 이제 60세 정년을 보장하는 직장은 없다. 노동 강도까지 살인적이다. 대기업 정규직은 경력직 위주로 채용된다. 저임금 고강도 중소기업은 외국인 노동자 판이다. 기업은 힘들고 돈 안 된다고 안 간다. 대학졸업장은 부두난 수표쪽지가 됐다. 창업에 매달려 보지만 청년창업은 취업보다 더 어렵다. 창업을 해본들 성공률은 채 10%도 안 된다. 거의 비정규직, 알바인생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업비와 생활비까지 대다수 부모의 몫이다. 그러다보니 실버세대는 노후대책은 고사하고 한숨뿐이다. 살인적인 물가상승과 사교육비, 생활비, 전세가에 짓눌려 결혼과 출산은 소설 속의 얘기가 되고 독신주의자로 전락한다. 이제 청년백수는 한 집안의 시한폭탄이요 비극으로 몰고 가고 있다.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그러다보니 대졸자는 고졸자가 부러운 시대가 됐다. 지난해 대졸 청년 실업률이 고졸 청년 실업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졸자들은 고용의 질도 좋아졌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 취업한 고졸자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더군다나 대졸자 10명 중 3명은 고졸자보다 임금이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졸자의 평균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대졸자의 비중이 32.7%로 증가했다. 대졸자와 고졸자의 평균 임금격차도 줄었다. 이런 마당에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이요 꿈이 임대업이라고 한들 누가 나무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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