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 서면에서 비포장도로를 돌고 돌아 장엄한 소나무 숲을 찾아가는 일은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수련하는 두타행(頭陀行)이었다. 아름드리 소나무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사람보다는 나무와 친구가 되어 오관을 활짝 열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 울진군 서면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초입에 들어서니 솔향기가 그윽하였다. 안도현 시인의 “금강송을 노래함”이란 시비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햇빛의 아랫도리 짱짱해 지고 백두대간의 능선이 꿈틀거리는 때, 보이지 않는 소나무 몸속의 무늬가 만백성 삶의 향기가 되어 퍼지는 때, 우리 울진 금강송 숲에서 한 마리 짐승이 되어 크렁크렁 울자” 이 시처럼 나 또한 한 마리 짐승이 된 듯 힘차게 소리 질러 보았다. 전신주처럼 솟아오른 금강송은 인간 세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신의 사닥다리와 같았다. 가끔씩 봄을 재촉하는 산새들의 노래가 들리고 원시의 세계에서 신비의 소리가 들려지는 생명의 발원지임을 느꼈다. 절벽에 기대 선 금강송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가믐으로 인하여 물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금강송 발 밑으로 조금씩 흘러내리는 청정수는 어머니의 기도가 섞인 정화수요, 고향에서 마시는 샘물처럼 맑기만 하였다. 숲과 나무는 안식처이고 그리움이다. 이 지구상에서 그 어느 것보다 오래 살아서 문명과 역사 속의 산 증거이고, 그토록 한자리를 지키고 있음은 참으로 위대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숲과 나무는 인간의 경외의 대상이고 이 수많은 숲을 이루는 나무들 중에 만수지왕(萬樹之王)인 금강송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붉은 몸을 드러낸 금강송을 보는 순간 먼저 카메라를 들이댈 수 밖에 없었다. 나무전문 촬영가 는 어떤 나무에 가서 무조건 셔터를 누르는 게 아니라 그 나무 곁에 오래 머무르고 교감이 이루어진 뒤에, 이윽고 그 나무가 그에게 셔터를 누르라는 허락이 떨어진 후에 찍는다고 했는데 그렇게 기다린다는 것은 시간이 허락지 않았다. 나무 전문가 고규홍 교수는 ‘나무 보는 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 나무 전체 모습을 위주로 바라다보며, 다음에는 가지가 어떻게 펼쳐졌는가를 바라보고, 세 번째는, 줄기 표면에 아로새겨진 세월의 증상을 느껴 보고, 시간이 되신다면 몇 바퀴 더 돌아보면 더욱 좋고, 최소한 세 바퀴 이상은 돌아 봐야한다”고. 많은 나무 중에서 나는 소나무를 사랑한다. 마치 훤칠한 미스 코리아들 앞에서 카메라 후레쉬를 터뜨리는 기자들처럼 붉은 종아리의 금강송을 돌아가면서 찍었다. 소나무가 내 뿜는 기(氣)를 마음껏 느껴 보았다. 천수만초개오폐(千樹萬草皆吾肺)란 말이 있다. 수많은 나무와 풀은 나의 허파라는 뜻이다. 그렇다. 저 아름드리 소나무와 그 언저리에서 춤을 추는 활엽수와 풀들이 어울려 숲을 이루고 숲이 품어내는 신선한 산소를 마시며 살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재선충의 피해로 고사목이 늘어가는 포항의 산들을 보면 가슴 아프지만 나에게 희망을 주고 생명을 주는 저 금강송은 대를 이어 후손들의 호흡을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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