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초안을 국무회의에 제출한 이후 3년8개월 만에, 2013년 8월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1년7개월 만에 우여곡절 끝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마침내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우리사회의 부정부패 규모나 깊이에 비춰볼 때 늦어도 한참 늦었다.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의 추악한 실상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또한 국회의 늑장 심사에 국민이 분노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늦게나마 입법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국회의원들의 속보이는 처사로 이성이 마비된 포플리즘 입법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돌고 돌더니 적용받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좁힌 것이나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부분이 아예 빠진 것 등 국회의원이나 정치인 및 선출직 공직자가 빠져나갈 구멍은 크게 해놓고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 및 그 가족까지 법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과도했다.
김영란 전 위원장이 마련했던 원안의 핵심 중 하나로 공직자가 자신과 가족, 친족 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전 해군참모총장과 그 아들이 합작으로 방산비리를 저지른대서 드러나듯 본인과 가족이 얽히는 것이 공직부패의 일반적 실상이다.
그러기에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를 반드시 입법화해야 하는 이유다. 시행시기를 1년6개월 뒤로 미룬 이유도 현 19대 국회와 내년 4월 총선까지는 김영란 법으로부터 자유롭겠다는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김영란 법의 통과로 우리사회는 깨끗한 사회로 변모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 지구촌 176개국 가운데 45위에 불과한 국가청렴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부패가 일상화된 우리의 현실에서 이 법을 만든 것 자체만으로도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준수와 시행으로 공정사회를 만드는 것이 전 국민이 마땅히 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법 적용 형평성을 두고 파열음이 이어지고 있다. 공무원은 물론 사학 교직원, 언론사 임직원까지 법 적용에 포함했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시민사회단체와 변호사, 의사 등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의원과 선출직 공무원의 경우 법안심의 과정에서 제재 예외활동 범위를 폭넓게 인정되도록 수정한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시민단체가 정부에 압력을 넣고 부정청탁을 받는 사례가 빈번한데도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변화사회는 물론법조계 일부에서도 국민이 공감할지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2012년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주도해 만든 입법예고 원안을 포함해 정부안 모두 정부와 공공기관 공직유관단체만 대상기관으로 삼았다. 여기에는 사립학교를 제외한 국공립학교가 포함됐고 언론의 경우 공직유관단체에 해당되는 KBS와 EBC만 해당됐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과 함께 법제정이 다시 논의되면서 정부의 국정쇄신과 정치권의 포플리즘이 영합돼 대상범위가 갑자기 확대됐다. 여야가 언론을 굳이 끌어들인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이럴 경우 법 적용대상이 국민의 40%에 달하는 2천만 명으로 확대돼 법을 제대로 집행하기 어려워진다.
국회는 이 법이 통과돼도 위헌 논란에 휘말려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짐작했을 것이고 그 결과 위헌으로 결정되면 정치권과 공직사회로선 법이 휴지가 되어 좋을 것이고 합헌으로 결정돼도 언론을 통제하기 쉬워지는 점에서 나쁠 것이 없다는 양수겸장을 노렸을 것이다. 이제라도 공직자로 적용대상을 한정하고 정치인 예외규정을 삭제하여 원안대로 조속히 보완해야 할 것이다. 국민을 더 이상 바지저고리 취급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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