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강연 초청을 받아 인도의 <칼라살링감> 대학교를 방문할 때의 이야기다. 공항에 도착, 시내로 진입하니 수많은 차량과 릭샤, 동물, 사람들 모두가 뒤엉켜 도로 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차량 들 역시 그러려니 하며 아무도 재촉하거나 짜증 내는 사람이 없어 이방인의 눈에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인도에서 지내면서 무엇보다 압권이었던 것은 사람들이 머리를 좌우로 까딱이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머리를 좌우로 까닥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린 머리를 앞뒤로 까딱여서 긍정의 뜻이거나 혹은 타인에게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머리를 좌우로 돌려 거부의 뜻을 나타내거나 부정의 뜻을 표하기도 한다.
머리 등 신체를 이용하여 자기 뜻을 표하는 방식을 <몸짓언어>라고 한다. 특히 인도인들이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헤드 보블링>은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몸짓언어이다. 인도에 체류하면서 인도인을 처음 만났을 때 머리를 좌우로 까딱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그건 부정의 뜻도 긍정의 뜻도 아닌 듯,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인도인들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이런 행위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의 영향이 아직 남아있다는 학설이다. 신분상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는 사회에서 상전에게 즉석에서 긍정과 부정의 답을 표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모호한 그 행위가 굳어져 인도인에게 남겨진 흔적이라는 것이다.자료를 찾아보니 이렇게 인도인들이 머리를 좌우로 까닥이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와 뜻, 의미도 있었다. 상대방의 요구에 응하거나 동의할 때 혹은 선의를 베풀며 고마움을 전할 때 그런 인사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우린 그러한 제스처를 하지 않으니 몹시 이해하기 어렵다. 인도에 처음 도착하면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자동차의 경적이다. 거의 무질서에다 주위는 온통 소음이고,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의 복장이 남루하여 자칫 인도인들을 질서가 없는 사람들이라 오해할 소지가 크다.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시끄러운 경적과 도로 위를 유유자적 걸어가는 동물들을 보고도 예민하지 않고 그저 기다린다.오히려 ‘경적을 울려주세요. (Please Honk)’ 라는 문구를 자동차 뒤에 붙이면서 ‘플리즈’라는 용어를 꼭 함께 쓴다. 이것은 곧 뒤차가 경적을 울리면 앞차가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려주는 현상으로 그들은 이해하고 있다. 우리처럼 뒤차의 경적에 앞차 운전자가 예민해지며, 도로 위 사고를 유발할지도 모르는 행위와 큰 반대 현상이다. 프랑스어로 <톨레랑스>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문화와 문화 사이 등에서 허용하는 인내심의 차이, 즉 그 사회가 인정하는 허용치를 말함이다. 혹은 개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신이 참고 지켜봐 줄 수 있는 그 한계치를 말한다.이것은 영어의 공차(Tolerance)와도 그 뜻과 한계를 같이하고 있다, 기계의 조립에도 상대 부품과의 연관관계가 있음을 말하는 관용의 미학이다, 톨레랑스가 높은 국가나 사람은 어느 정도의 여유로움과 따스함을 가질 것이고, 그 반대는 아무래도 삭막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인간사회가 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인도 사회의 머리를 좌우로 까딱이는 상황이 재미있다. 인도여행을 마친 혹자는 “신이 버린 나라, 그러나 그 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고 인도를 지칭하기도 한다. 먼지가 펄펄 나고 혼잡스러운 도로와 일부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함께 잘 살아가는 법을 말해 주고 있었다.지난 몇 해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증오범죄나 특히 증오를 이용한 정치가 무성했다. 편 가르기, 내 편이면 불법도 용납되고 내 편이 아니면 용서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를 형성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 구성원이 지닐 수 있는 잠재적 증오와 온라인을 통한 혐오 표현, 차별 선동이 증가하고 있다. 남과 여가 증오로 반목하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대치하고, 부자와 빈자가 대립하고, 사용자와 근로자가 반목하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외교에도 증오심을 불러와 자신들의 정파에 유리한 외교관계를 설정하기 바빴다.이런 편견과 증오는 국가의 발전이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크게 보탬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모두를 퇴행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 국민은 표현의 방법과 개인 성향의 차이로 정당의 선택과 지지는 허용된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와 국민을 편 가르고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형태라면 용인될 수 없다. 여권이나 야권에서 정책의 토론 대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국민을 이용하고 증오를 부추기고 적전분열의 모습을 보이게 되면 그건 용서받지 못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세계의 경제, 문화, 외교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는 상황이 되었다.일개 교수의 눈에조차 타국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관용의 모습을 보는데, 진영 간에 왜 서로 협력하고 돕는 행위가 어려운지 이해가 안 된다. 이제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2022년 임인년(壬寅年) ‘호랑이의 해’가 가고 2023년 계묘년(癸卯年)의 새해가 밝아온다. 새해에는 토끼처럼 온순하고 남의 말을 존중하고 잘 듣는 토끼처럼 입 대신 귀가 큰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